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진 지난 2일 자정을 막 넘긴 강남역 앞. 목도리와 장갑으로 꽁꽁 싸맨 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도로변으로 쏟아져 나왔다. 택시 정류장은 몇 분 사이 북새통으로 변했다. 택시기사들에게 ‘대목’으로 꼽히는 ‘불 금(불타는 금요일)’에 과연 택시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뜻밖에도 시민들은 큰 어려움 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추운 날씨에도 택시 정류장 근처에서 ‘매의 눈’으로 승차거부를 단속하는 서울시 택시위반행위단속반 덕분이다. 단속반은 이날 4명이 한 조를 이뤄 강남역 일대를 돌며 약 4시간 동안 승차거부, 불법 영업행위 등을 적발했다. 단속반원들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택시기사에게 위법 사실을 알리고, 차량 번호와 택시면허증 등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로 남겼다.
서울시는 이날 연말을 맞아 송년회 등으로 택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상습 민원지역 20곳에 99명의 공무원을 투입, 택시 승차거부 집중단속을 벌였다. 2일 오후 10시께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불법 승차 거부한 택시 9대를 적발해 각각 과태료 20만원을 부과했다.
서울시의 적극적인 단속이 효과를 내면서 승차거부 신고 건수는 줄어들고 있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교통지도과에 따르면 ‘120 서울 다산 콜센터’에 접수된 승차거부 신고 건수는 2013년 1만4,718건, 2014년 9,477건, 2015년 7,760건, 2016년 9월까지 5,346건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이날 단속에 나섰던 한 단속반원은 “서울시가 승차거부를 줄이기 위해 꾸준히 단속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택시기사들에게 인지되면서 승차거부가 줄어들고 있다”며 “20만원에 달하는 승차거부 과태료가 현실적으로 택시 기사들에게 큰 부담이다 보니 점점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속반원들의 눈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사정이 달랐다.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승차거부가 횡행하고 있었다. 실제 기자가 단속 현장을 조금 벗어나 현장을 살펴보자 승차거부가 연이어 목격됐다. 도로변에 늘어선 시민들이 저마다 “서대문”, “마포” 등 행선지를 외쳤지만 ‘빈 차’ 표시등이 켜진 택시들은 오히려 속력을 높여 지나치기 일쑤였다. 단속이 강남대로·홍대·광화문 등 특정 상습 민원지역에 국한되는데다, 단속 시간도 제한적이다 보니 오히려 이를 교묘히 피해 불법영업을 하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잇달아 승차거부를 당한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 하염없이 걸어왔다는 직장인 하인호(27)씨는 “사당까지 평소보다 2배 이상 비싼 4만원에 가자는 택시를 거절했는데 지금은 그 택시가 아쉬울 정도”라며 “신논현역 근처의 승차거부가 더 심한 것 같아 이를 단속하고 있는 강남으로 다시 이동해야 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서울 지역 택시의 불법영업도 심심찮게 발견됐다. 추위에 떨며 택시를 잡고 있는 시민들에게 다가가 평소 3∼5배 이상의 요금을 요구하며 호객행위를 벌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단속반은 이를 멀끔히 바라보면서도 단속에 나설 수 없는 처지다. 경기·인천 택시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단속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승차거부 단속을 벌여온 곽석종(68) 단속반장은 “제한된 인력으로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승차거부를 비롯한 택시기사들의 불법행위를 적발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며 “택시 기사들 스스로 준법의식을 높이고, ‘대목’을 노린 영업보다 승객들과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승차거부가 근절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