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거세지는 '촛불'... 경찰도 '응답'하기 시작했다






2차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11월 5일 밤 10시 30분 쯤, 청와대 인근 내자동 근처에서 일단의 시민들이 경찰 병력과 차벽에 둘러싸여 귀가길이 막혀 버렸다. 이들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쪽으로 가려했지만 허사였다.

“집에 보내주세요. 옥인동이 집이에요. 들여보내 주세요”

추위와 싸워가며, 경찰의 ‘들어갈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가며 힘껏 소리내길 30여 분, 한 명씩 들여보내 주겠다는 경찰의 ‘진입 허가’가 떨어졌다. 일일이 경찰이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몇 겹으로 둘러쳐 있는 경찰 기동대를 온몸으로 통과하고 나서야 집으로 가는 길을 잡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4주 후, 경찰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여전히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경찰은 시민들의 편안한 집회 참여를 위해 ‘소통’하는 경찰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런 경찰의 모습에 시민들도 경찰에 대한 ‘경계심’을 점점 풀었다. 서울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촛불’과 ‘방패’를 들고 시민들과 경찰이 ‘한 마음’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민심은 천심’, 경찰도 결국 ‘국민’이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3년 전 서울에서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마친 김진영(27)씨는 “집회 출동을 자주 나가봤지만, 정해진 신고 시간 이후에 해산을 권고할 때 요즘처럼 ‘친절한 방송’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촛불 집회가 6주에 걸쳐 이뤄지며 단 한 번의 폭력 사태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됐기에, 경찰 입장에서도 ‘경고’보다 ‘타이름’으로 방송 어조를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집회에 직접 참여한 시민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생 권이슬(22)씨는 “법질서를 농락한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 우리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경찰 방송을 듣고 놀랍기도 했고, ‘우리와 같은 마음이구나’하며 안심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을 직접 겪어본 ‘기성세대’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인 서현준(48)씨는 “항상 집회에 나올 때면 느끼던 것이 경찰은 ‘무섭고, 저항해야 하는 존재’였는데, 이번 촛불집회에 여러 번 참석하다 보니 인상이 점점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며 “자식을 둔 입장에서 경찰 부모님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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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동락’, 경찰도 ‘응답’하기 시작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11월 26일 벌어졌던 ‘5차 촛불집회’부터 운영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임시 수송차량’./이종호기자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11월 26일 벌어졌던 ‘5차 촛불집회’부터 운영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임시 수송차량’./이종호기자


‘취업준비생’ 김선영(27·가명)씨의 집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이다. 집이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있다 보니 학교에서 공부를 끝내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에는 경찰과 ‘입씨름’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같은 곳에 집이 있는 대학생 한수정(23)씨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한씨는 “집이 삼청동 쪽이라 오후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집에 가려고 하는데, 다 차벽으로 막혀 있어서 결국 30분 정도나 돌아갔다. 버스도 운행하지 않고 택시도 지나가지 않는데 차벽으로 길목을 막아놓으면 주민은 어떻게 집에 가나, 이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집회 초반 경찰의 ‘불통’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최근 집회가 벌어지는 토요일에는 다소 불편이 적어졌다. 경찰이 운행하고 있는 임시 수송차량 덕분이다. 차량 운행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임 모 순경은 “차량을 타더라도 차벽 근처에 가면 다시 내려서 걸어야 하지만 이용하는 시민들 반응이 좋은 편”이라며 “아직 많은 분들이 이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민들의 편의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쓰러진 시민을 보고 다급하게 핫팩을 뜯어 건네준 경찰들./사진=국민TV 뉴스K 영상 캡쳐쓰러진 시민을 보고 다급하게 핫팩을 뜯어 건네준 경찰들./사진=국민TV 뉴스K 영상 캡쳐


경찰은 시민들의 귀가 뿐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지난 3일 집회가 한창이던 밤 11시 종로구 궁정동 효자 치안센터 근처, 추위에 지친 한 시민이 길가에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쓰러진 시민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각자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덮었지만 체온을 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경찰 버스에서 ‘핫팩’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가 있던 의무경찰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핫팩을 시민을 위해 던져준 것이다. 버스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경찰들은 응급한 상황에 발생하자 재빨리 시민을 돕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핫팩과 차벽 너머에 있던 여유분까지 내놓았다. 다행히 쓰러져 있던 시민은 이후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허수열(38·가명)씨는 “집회에 나올 때마다 감동적인 장면을 많이 보는데, 쓰러져 있는 시민을 위해 핫팩 여러 개의 포장을 뜯어 다급하게 흔들어 건네 줬던 경찰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심전심’, ‘적’이 아닌 같은 ‘국민’으로 마음을 나누는 시민들

경찰과 ‘이심전심’을 느끼고 있는 시민들./이종호기자경찰과 ‘이심전심’을 느끼고 있는 시민들./이종호기자


촛불집회가 시작된 초반만 하더라도 경찰도 청와대와 함께 가는 ‘동일체’로 인식하던 시민들이 많았다. ‘왜 대통령을 보호하고 있냐’, ‘방해하지 말고 물러나라’ 등의 구호도 집회 현장에서 빈번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6차례의 촛불집회를 지내며 시민들은 경찰에 대해 촛불집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동반자’의 인식이 강해졌다. 집회 참여차 충남 서천에서 상경했다는 이병인(28)씨는 “전에는 경찰 차벽에 대해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지금은 차벽 아래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안전하게’ 소리를 낼 수 있는 ‘방패’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집회에 직접 참여한 시민들 뿐 아니라 집회가 일어나고 있는 광화문, 안국동, 경복궁역 주변 상인들도 같았다. 경복궁역 근처 한 작은 카페는 경찰들에게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단돈 1,000원에 판매하며 격려했고, 다른 상인들도 물과 김밥 등을 주면서 ‘수고한다’는 말을 건넸다.

/이종호기자 홍주환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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