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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커튼콜’ ② 박철민의 악역 변신? “박보검 좀 그만 괴롭히라고 하더라고”

지난 12월 2일 열린 영화 ‘커튼콜’의 언론시사회에서는 뜻밖의 풍경이 펼쳐졌다. 기자간담회를 하던 도중 박철민이 느닷없이 눈물을 왈칵 쏟고 만 것이다. 평소 영화나 드라마에서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하던 박철민이었기에 그 눈물의 의미는 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영화 ‘커튼콜’의 개봉을 앞두고 6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커튼콜’에 출연한 배우 박철민을 만났다. 박철민은 이 자리를 통해 언론시사회에서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명품 조연’ 혹은 ‘애드리브 장인’으로 불리는 그의 연기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냈다.


박철민은 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대학로의 노동연극 전문극단 ‘현장’에서 연극배우로 첫 발을 디뎠다. 이후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박철민은 2004년 영화 ‘목포는 항구다’의 조폭 ‘가오리’와 KBS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김완’을 연기하며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영화 ‘커튼콜’ 박철민 / 사진제공 : 봉봉미엘영화 ‘커튼콜’ 박철민 / 사진제공 : 봉봉미엘




이후 박철민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특유의 코믹연기로 관객들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대학로 시절부터 ‘늘근도둑 이야기’와 같은 코믹극을 통해 다져진 뛰어난 감각과 애드리브, 그리고 어떤 배역을 맡아도 ‘신스틸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코믹함은 박철민이라는 배우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이런 학습효과로 인해 관객들은 박철민이 등장하면 자연히 코믹한 애드리브를 기대하게 됐지만, 이는 정작 박철민이라는 배우 본인에게는 서글픈 일이었다. ‘커튼콜’ 언론시사회에서 보여준 박철민의 눈물은 그를 ‘코믹배우’로만 인식하는 관객들의 시선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이런 이미지의 배우로 굳어진 자신의 모습에 대한 속상함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애드리브라는 것이 하다 보면 정형화되기도 하고, 식상해지기도 해요. 그런 모습들을 자꾸 연기하다 보니 제가 지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어 눈물이 좀 났습니다. ‘커튼콜’에서 제가 연기한 ‘철구’는 극 중 설정도 애드리브에 지친 캐릭터라 실은 더 조심했고, 그 어느 작품보다도 애드리브를 절제했어요.”

박철민이 최근 영화 ‘약장수’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연이어 악역 캐릭터를 소화한 것도 바로 이런 고민의 발로였다. 애드리브와 웃음으로 승부를 보는 배우가 아니라 주어진 캐릭터 그 자체를 파헤치고 연구하며, 감정을 생략하고 절제해가며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영화 ‘커튼콜’ 박철민 / 사진제공 : 봉봉미엘영화 ‘커튼콜’ 박철민 / 사진제공 : 봉봉미엘



중국 춘추시대의 사상가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을 통해 사람의 나이 50세를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여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그동안 자신이 코믹연기의 달인, 혹은 애드리브의 장인이라고 생각해온 박철민은 나이 50이 되어서 자신에게 악역에 어울리는 눈빛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박철민이라는 배우에게 주어진 ‘하늘의 뜻’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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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 그린 달빛’을 모니터하며 저한테도 이런 눈빛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너무나 다행이고 고맙게 생각했죠. 앞으로도 배우를 하며 그런 고마움을 더 느끼고 싶어요. 이 늦은 나이에 절제하고 생략하는 법을 공부하게 되어 다행스럽고, 배우로서 정상에 가본 적은 없지만 어제보다는 오늘 내 연기가 나아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됐고.”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철민이 보여준 악역 연기는 실로 기대 이상이었다. 박철민은 드라마에서 왕세자 이영(박보검 분)을 제거하려고 하는 외척가문 김씨세력의 2인자인 이조판서 ‘김의교’를 연기하며 항시 음흉한 눈빛으로 왕세자를 노려보고, 자객을 동원해 왕세자 박보검을 직접 해하려는 악독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믹 전문배우 박철민을 생각한 시청자들에게 이런 박철민의 변신은 매우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을 하면서 네티즌들이 너무 밉다고 하는 댓글도 봤고, 지인들한테도 박보검 좀 그만 괴롭히라고 하는 말도 들어봤어요. 근데 이런 말을 들을 수록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혹시 내가 타고난 악인이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고. 만약 누가 저에게 악역 캐릭터를 제의한다면 지금은 우사인 볼트보다도 빨리 달려갈 것 같아요. 절대적인 악역, 다중적인 악역, 그런 것들로 이제는 관객을 웃기기보다 괴롭혀보고 싶어요.”

영화 ‘커튼콜’ 박철민 / 사진제공 : 봉봉미엘영화 ‘커튼콜’ 박철민 / 사진제공 : 봉봉미엘


지천명의 나이에 코믹 전문배우, 애드리브 장인이 아닌 ‘악역 전문배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 박철민. 물론 이후에도 우리는 박철민의 악역 연기보다 코믹 연기를 더 많이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명품 조연’이라는 말은 듣기에는 근사해 보이지만, 실은 주인공들처럼 진지하게 고민을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감독 역시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내기보다 기존 익숙한 이미지의 배우를 안전하게 같은 이미지로 캐스팅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철민에게는 아직도 남은 연기인생은 매우 길다. 나이 50세라고 하면 슬슬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지만, 박철민은 아직도 신인배우와 같은 열정과 마음으로 자신의 안에서 새로운 ‘박철민’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열정은 박철민이 인생의 마지막 작품을 하는 순간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제가 바라는 인생은 이런 거예요. 늙어서 겨우겨우 몸만 움직일 정도인데, 아무리 짧은 대사라고 해도 날 불러주는 현장이 있으면 나가서 연기를 하는 거죠. 그렇게 연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멸치볶음에 맥주 딱 한 잔 하고 잠이 들었는데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것. 그게 제가 바라는 꿈입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배우로 죽을 수만 있다면 정말 최고의 삶이 아닐까요?”

원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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