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의원 '무딘 칼'에 김기춘·김종 '모르쇠'...맥없는 청문회

<성과 못거둔 청문회>

김기춘 상황 꿰뚫은 노련함에 의원들 맥 못춰

김종도 관련 의혹에 "기억 안나" 말만 되풀이

의원들 사전준비 부족...애정문제 질문도

최순실까지 청문회 불참..."실체 접근 한계" 비판





정권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청문회가 이렇다 할 한 방 없이 끝날 조짐이다. 국민들은 최순실씨가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과 부처 인사 등에 어떻게 개입했고, 어떻게 국정을 헤집고 다녔는지 대해 궁금해 하고 있지만 청문회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놓는 데 미흡했다는 평가다. 전날 열린 국내 9개 대기업 총수를 대상으로 한 청문회에서는 청와대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을 강조해왔는지, 무언의 압박을 줬는지 등에 대해 직접적인 총수들의 증언을 받아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의혹의 핵심인 최순실씨가 불참해 관심이 떨어지다 보니 국정조사 위원들이 사전준비를 미흡하게 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맞지 않은 사안을 관련자 제보라며 증인에게 질문했다가 정정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순실씨 조카인 장시호씨에게 “13년 만에 제주에서 강릉으로 옮긴 적이 있지 않느냐”며 “장시호씨와 함께 산 사람이 한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장시호씨는 “저랑 같이 산 사람이요?”라고 반문하며 “(강릉에 산 적이) 절대 없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베트남에 간 적이 있지 않으냐”고 추가로 질문했지만 장시호씨는 “여권 기록을 보면 다 나올 것”이라며 일축했다. 주소지나 여권 기록 등 기본적인 자료검증도 없이 질의에 나섰다가 증인들로부터 공박을 당한 것이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을 향해 “이미경 CJ 부회장에게 직권남용을 한 것을 인정하느냐”고 했다가 조 전 수석으로부터 “(직권남용 혐의가 아니라) 강요미수 (혐의)”라는 대답을 들었다.


핵심 의혹과 동떨어진 질문으로 비판을 자초한 사례도 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고영태 증인에게 “최순실씨를 지금도 좋아하느냐, 미워하느냐”라고 말했다가 네티즌의 비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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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들의 해명성 답변을 도와주는 질문도 있어 눈총을 샀다. 최교일 새누리당 의원은 청와대의 ‘CJ 이미경 사퇴압력’과 관련, 김 전 비서실장을 상대로 “(CJ가 만든) 영화 ‘화려한 휴가’와 ‘왕의 남자’ 등을 보고 나서 ‘불쾌했다, 누가 만들었느냐’고 얘기하면서 문화계에 관여하려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맞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전 비서실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청와대 외압 의혹 물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오로지 증인에게 해명 기회를 주기 위한 질문에 그쳐버린 것이다.

국정조사 위원들은 이날 참석 증인들을 상대로 “최순실씨를 언제부터 알게 됐느냐”고 집중 질문했다. 최순실씨가 의혹의 중심에 있다 보니 최순실씨와의 관계가 중요해서다. 하지만 그 이상을 건지는 데는 실패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범계 의원이 지난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방문 당시 정윤회·최순실 부부와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도 최씨를 알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최씨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다. 이렇게 되자 추가 질문이 막혀버렸다. 어떤 경우에는 의원들의 일방적인 호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어떻게 최순실을 모른다고 하느냐며 여러 위원분들이 답답해 하는데 나도 답답하다”며 “내가 최순실을 알았다면 휴대폰이든 뭐든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일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안민석 의원은 “오리발 실장, 부인도 모른다고 할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지만 김 전 실장의 입을 여는 데는 실패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 헤어 코디를 누가 하느냐”는 질문에도 김 전 실장은 “모른다”고 답했다. 황 의원은 “비서실장이 직접 임명해놓고도 모르냐”며 “이런 걸 모른다고 하니 참 딱하다. 어떻게 질의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김 전 실장의 노련한 언변과 모르쇠 답변에 의원들이 맥을 못 춘 것이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역시 관련 의혹에 “사실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러다 보니 청문회는 하루종일 맥이 빠진 채 진행됐다. 일부 국정조사 위원들은 최순실씨와 고영태씨·차은택씨 등 세 사람 간의 애정 문제 등을 연상케 하는 질문으로 일관하는 등 흥미 위주로 접근해 총제적인 진실규명에는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인들의 무성의한 답변과 여야 국정조사 위원들의 뻔하고 무딘 질문이 맥빠진 청문회의 ‘공범’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부에서는 일부 위원들이 국민들로부터 제보를 받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실시간 쏟아지는 문자제보를 토대로 질문하다 보니 부실한 청문회라는 결과를 낳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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