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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판도라’ 박정우 감독 “지진 나니까 잽싸게 만든 영화냐는 오해도…”

박정우 감독의 영화 ‘판도라’는 말 그대로 천운(天運)이 함께한 영화였다. 대지진으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생겨 폭발하는 이야기를 구상했더니 실제로 경주 지진이 발생해 지진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졌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영화에 넣었더니 현실정치에서는 정반대의 대통령이 등장했다. 덕분에 제작기간만 4년이 걸린 영화가 개봉할 시점이 되니 개봉시점의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12월 7일 개봉하는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는 2012년 개봉한 ‘연가시’에 이은 박정우 감독의 두 번째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다. ‘연가시’로 기생 생명체인 연가시의 공포를 현실감 있게 그려낸 박정우 감독은 ‘판도라’를 통해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초유의 재난과 그 재난에 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판도라’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박정우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 시절부터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박정우 감독은 쉬지 않고 원자력 발전소의 현실부터, 현실 정치와의 싱크로율에 대한 이야기까지 ‘판도라’에 대해 듣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전작 ‘연가시’가 재난영화다 보니 준비과정에서 재난영화를 굉장히 많이 찾아봤어요. 그때 든 생각이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재난영화가 나온다면 원자력 발전소 사고나 과도한 전력사용으로 인한 블랙아웃 정도가 남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났잖아요. 그럼 제 생각에는 일본만큼 원전이 밀집되어 있고 노후한 우리나라도 발칵 뒤집히며 원전 대책을 점검해야 정상인데, 우리는 원전을 더 짓겠다고 한단 말이에요. 마침 2012년 ‘연가시’가 흥행이 되면서 다음에도 큰 영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고, 그러면 원전 폭발사고를 한 번 해보자고 해서 ‘판도라’를 시작하게 됐죠.”

‘판도라’에서 원자력 발전소 폭발의 원인을 제공한 지진은 물론 한낱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천재지변이었다. 하지만 진도 7의 강진도 견딘다던 원자력 발전소가 내진강도에 못 미치는 진도 6의 지진에 결국 폭발사고를 일으킨 것은 명백히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였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는 대부분 30년이 넘었고, 영화 속 발전소의 모델인 고리 원자력 발전소는 40년이 넘었어요.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그 시기 만들어진 건물들이 정직하게 만들어진 경우가 드물어요. 그리고 문제는 외부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그 안의 구조물들이에요. 외형은 멀쩡해도 냉각수 파이프, 전선 등 그 안의 구조물들이 과연 견딜 수 있을까요?”

‘판도라’가 재난영화로서 더욱 소름 돋게 다가오는 이유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결코 과장되지 않은 현실이라는 점이다. 혜성이 충돌하고(아마겟돈), 지구가 대지진으로 멸망하는(2012) 이야기는 그저 영화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동남권에 밀집한 원자력 발전소 중 하나가 폭발할 경우 당장 대피해야 할 배후인구가 300만이 넘는다는 영화 속 대사는 ‘영화니까’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공포가 아니다. 실제로 2011년 바로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 같은 사고가 터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영화 ‘판도라’ 김남길과 국무총리 이경영, 대통령 김명민 / 사진제공 : NEW영화 ‘판도라’ 김남길과 국무총리 이경영, 대통령 김명민 / 사진제공 : NEW



게다가 ‘판도라’를 더욱 소름 돋게 만드는 이유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초유의 대난에 대처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국무총리(이경영 분)는 국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 국민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자세로 사건의 철저한 은폐를 지시하고, 정치경험이 적은 젊은 대통령(김명민 분)은 국무총리와 힘겨루기를 하다가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을 막을 수 있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다. 이런 정치권의 모습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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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공방을 다룰 때 가장 주의할 점이 정치인들의 모습을 희화화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보통의 재난영화처럼 정치인들을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희화화한다면 원전이 문제가 아니라 원전을 관리하는 콘트롤 타워가 문제여서 재난이 발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원전사고는 아무리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도 지금의 현실에서는 불가항력이에요. 실제 사고가 발생하면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고 보면 재미난 일이다. 정부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며 안보위기를 조장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핵폭탄보다 더욱 위험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서는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는 클린 에너지’라며 찬사를 보낸다. 사실 원리는 비슷하지만 폭탄은 ‘핵(核)’이라고 말하고, 발전소는 ‘원자력(原子力)’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단어 하나의 차이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가 가지는 위험성이 경감되는 착시효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판도라’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촉매 정도가 되어야지, 그 방향까지 제시한다면 선동영화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수위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어요. 저도 원자력 발전소가 이만큼 위험하니 지금 당장 가동을 중단시키라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원자력 발전소 폭발에 대한 제대로 된 대처 매뉴얼이 있는지, 핵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할 방법이 있는지를 묻고 싶은 거죠. 고리 1호기의 경우 지금부터 폐로(廢爐)를 준비해도 10년 안에는 폐로를 할 수가 없어요. 소련 체르노빌 방사능 사고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남아있고, 일본 후쿠시마 사고도 5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원자로 안을 확인하지 못해요.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그런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에 대해 관심을 가져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 사진제공 : 올댓시네마


원자력 발전소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가득 담겨 있기에 ‘판도라’는 중간에 투자자들이 철수한 것이 정치권의 외압으로 인한 것이라는 외압설이 떠돌기도 했다. 게다가 국민들 앞에 솔직하게 원자력 발전소 폭발을 공개하고 사과하며 협조를 요청하는 대통령 김명민의 모습은 하필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탄핵정국과 겹쳐지며 더욱 민감한 정치적 이야기로 발전하게 됐다.

“사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하면서 저희도 크게 놀랐어요. 시나리오 쓸 때는 그저 원전 폭발 사고의 한 가능성 정도로 생각한 지진이 한국에서 실제로 그렇게 일어날 줄 몰랐거든요. 영화 속 시나리오처럼 실제로 지진으로 인해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판도라’ 개봉이 문제가 아니라 저부터 한국을 떠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애초에 저희는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시기에 영화가 개봉해서 ‘판도라’가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며 화제가 되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개봉을 앞두고 지금과 같은 시국이 펼쳐졌고, 그러다 보니 시류에 편승한 기획영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아요. 영화 제작기간만 4년인데, 어떤 분은 경주에서 지진 나니까 잽싸게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하하.”

원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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