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 배신의 정치가 낳은 포퓰리즘

정두환 국제부장

전세계 정치판 뒤흔드는 포퓰리즘

기성 정치에 대한 배신감의 산물

대한민국 정치는 어떤 길 택할까





‘탈진실(post-truth)’. 유권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 캠페인을 뜻하는 단어다. 특히 진실과 상반된 내용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다.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Brexit) 결정에 이어 지난달 미국 대선에서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두는 등 전 세계에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포퓰리즘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되찾겠다며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보호무역의 부활을 선언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포퓰리즘 정책은 미국 안팎에서 거센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그는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려던 에어컨 업체 캐리어를 협박과 회유로 주저앉혔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정책에는 심지어 미국 기업조차 반발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최저비용 최대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기본적인 생리에 반하는 탓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거짓 정책으로 노동자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포퓰리즘은 영국과 미국 이전에 이미 유럽에 상륙해 대륙의 정치 지형을 급격하게 흔들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시리자’는 그리스 경제 위기를 틈타 집권한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당이며, 이탈리아 개헌 반대를 주도해 마테오 렌치 총리를 끌어내린 것도 극우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다. 지난 5일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자리를 위협했던 노르베르트 호퍼는 극우 자유당 소속이며, 내년 4월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역시 벌써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당수와 기성 정치를 대표하는 공화당 후보 프랑수아 피용의 한판 대결로 압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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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대륙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포퓰리즘을 포스트-트루스를 내세운 극우정당들의 꼬임에 넘어간 대중의 ‘잘못된 선택’으로만 치부할 문제일까.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최근 이례적으로 영국 일간 가디언 기고를 통해 전 세계 정치권에 쓴소리를 내놓았다.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그는 “지도자들에 의해 버려졌다고 느낀 이들의 분노의 외침”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들을 단순히 ‘조악한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에둘러 모면하려 한다면 끔찍한 실수”라는 것이다.

허황되고 과격한 주장들로 손가락질 받았던 포퓰리즘 정당들이 기존 정치판을 뒤엎을 만큼 세를 불리고 있는 밑바탕에는 기성 정치에 대한 ‘배신감’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의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미국 노동자들은 오히려 갈수록 심화하는 부의 편중에 분노했고, 모두가 잘사는 ‘하나의 경제’라는 이상을 좇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가입했던 남유럽 국가들은 통합의 열매가 일부 국가에만 열리는 것을 보며 좌절했다. 기성 정치권은 국민들이 포퓰리즘에 속아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한탄하지만, 돌이켜 보면 기성 정치의 배신이 국민을 등 돌리게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가를 아침이 밝았다. 국민들은 숨죽인 채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내릴 결정을 지켜볼 것이다. 확실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투표의 결과가 가결이든 부결이든 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2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을 든 것은 단순히 대통령 한 명 때문은 아니다. 희망이 아닌 절망이 돼버린 ‘배신의 정치’에 대한 경고다. 한편으로는 내 자식 세대에는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좌절과 분노의 표출이다. 만약 탄핵 이후 우리 정치권이 정파의 이익에만 눈멀어 기성 정치의 구태를 반복한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으로 몰락을 자초한 유럽 기성 정당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dhchung@sedaily.com

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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