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뒷북경제]FTA 마법도 안 통하는 수출…혁신 잃은 한국제품 수출 텃밭에서 추락

주력제품·중국 시장 과도한 의존에 수출·흑자 악화

對中 경쟁심화 ‘FTA 체결·공산품 수출 증가’ 공식 깨져

혁신 잃고 정체된 산업구조, 제품·가격 경쟁력 약화

첨단 제조업 마저 중국에 빠르게 밀려나는 추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산업전시회 한번 가보세요. 중국 판입니다. 중국 판. 여기 신발 공장이나 플라스틱 제조업체들 한국 기계 쓰다 중국제로 넘어가고 있어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생산공장을 오가며 업무를 보는 중소기업 A업체의 현지 B법인장은 아세안 시장은 “범용 제품은 중국산, 고품질 제품은 일본·유럽산을 쓴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에서 유럽이나 일본산 고가 기계로 찍어내기 때문에 품질이 좋다”면서 “TV를 제외하면 컴퓨터, 스마트폰 등 일반 제품들도 죄다 중국산”이라고 전했다.


◇수출·무역흑자액 동반 감소= 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 수출 상위 10개국에서 벌어들인 무역흑자가 910억달러(10월 확정치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1,023억달러) 보다 11.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우리나라 무역흑자가 줄어드는 속도는 전체 수출(-8.0%)보다 가파르다. 지난해 기준 수출 상위 10개 국가에서 벌어들인 무역흑자는 1,243억달러로 전체 흑자액(902억달러)의 1.4배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미국 등 주요 시장에 공산품을 팔아 흑자를 벌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에서 본 적자를 만회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100달러대이던 유가가 50달러 이하로 급락하면서 산유국에서 보는 무역적자가 줄어 흑자규모(902억달러)가 2014년(471억달러) 보다 두 배(91%) 가까이 뛰기도 했다. 하지만 저유가에 따른 무역흑자 증가 효과는 한 해 만에 끝났다.



흑자액이 줄어든 이유는 최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 아세안 등에서 우리 주력 수출품들의 경쟁 심화로 우리 제품의 가격이 낮아진 때문으로 추정된다. 올해 10월까지 대중 수출액은 1,007억달러로 전년 대비 12% 줄었는데 흑자액은 298억달러로 전년(393억달러) 24% 줄었다. 흑자액 감소 폭이 수출의 두 배에 달하는 셈이다. 수출 2위 시장인 미국 흑자액(197억달러·-7.5%)도 수출(-5.9%)보다 빠르게 줄고 있다. 반면 일본 무역 적자는 187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73억달러)보다 8% 확대됐다.

B법인장의 설명대로 올해 미국(14%)보다 비중이 큰 아세안(15%) 시장 수출은 3.8% 줄었다. 특히 아세안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인도네시아 수출은 20% 급감했다. 주요 수출품이던 칼라TV(-39.6%), 열연강판(-21.4%) 등 철강 수출이 줄어서다. 대인도네시아 무역적자액도 13억4,900만달러(10월)로 전년(6억6,800만달러)에 비해 곱절로 뛰었다.


◇안 통하는 ‘FTA 체결+공산품 수출 확대’ 전략=우리 제품 수출이 줄어든 자리는 중국 제품이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시장에서 우리와 중국 제품의 수출 경합도는 2010년 66.2에서 2014년 70.3까지 높아졌다. 중국은 같은 기간 아세안 시장에서 철강(14.1%)과 통신기기(13.1%), 전자제품(4.76%) 등 우리와 경합하는 분야의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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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스러운 대목은 FTA 체결로 관세가 낮아진 국가에서마저 우리 제품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세안 시장의 경우 2009년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2년간 수출이 30% 가까이 뛰었지만, 지난해(-11.5%)와 올해(-3.8%)는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생산공장이 대거 지어져 수출 호조를 누리고 있는 베트남(13%)을 제외한 말레이시아(-3.7%)와 필리핀(-16.6%) 등 아세안 주요 시장 수출 성적은 더 좋지 않다. 다른 FTA 체결 국가에서도 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체 수출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EU에서도 수출과 무역흑자가 동시에 줄어들고 있다.

FTA 발효 후 연도별 수출 증감률.FTA 발효 후 연도별 수출 증감률.


이는 우리 주력 13대 수출 품목이 빠르게 자리를 뺏기고 있는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 13대 품목의 시장 점유율은 2011년 5.7%에서 지난해 5.3%로 낮아졌다. 반면 중국은 15.2%에서 18.3%까지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리는 FTA를 체결해 선진국에 공산품을 팔았는데 중국이 쫓아오니 신흥국 수출을 늘리는 전략을 짰다”면서 “하지만 이제 신흥국 시장에서마저 중국제품에 밀려서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변화 없는 산업구조가 결국 ‘독’으로= 수출액 감소는 부진한 세계 경기에 중국과 EU, 아세안 등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무역흑자액도 동시에 줄어드는 것은 제품 경쟁력이 하락한 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 시장에서 경쟁이 심해지면서 우리 제품이 예전만큼 값을 받지 못하니 수출액과 무역흑자가 줄어드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경쟁력이 급감하는 상황. 기술력이 높아진 중국이 주요 공산품을 자국 제품으로 대체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10년여간 중국 경제가 연 10% 수준의 고성장을 할 때 대중 수출과 무역흑자를 늘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력 품목들의 혁신이 늦어지며 결국 중국의 추격과 추월을 허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미 우리 산업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 혁신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산업의 변화 수준을 나타내는 산업구조화지수는 1990년대 0.73에서 2000년대 0.48, 2010년 이후에는 0.40까지 낮아졌다.



이러는 사이 시장에서 수요가 줄어드는 우리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국제 비교가 가능한 우리나라 10대 주력 수출품목이 자치하는 비중은 2004년 68%에서 2014년 76%까지 확대됐다. 전체 13대 품목의 비중은 전체 수출의 78%에 달한다.

전체 수출  가운데 주력 수출품목 비중.전체 수출 가운데 주력 수출품목 비중.


미래는 더 불안하다. 그나마 앞서 있던 첨단제조업 시장에서도 중국에 밀리고 있어서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첨단제조업 수출 증가율(2010~2014년)은 0.5%로 중국(4.7%)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산업 경쟁국인 독일(8.4%)과 대만(4.7%)도 빠르게 첨단제조업 수출을 늘리고 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시장에서 우리 주력 수출품목들이 가격 변동에 예전보다 많이 노출되고 있다”며 “신규 수출 품목이 나오지 않으면 (기존 제품만으로) 수출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올 것”이라고 전했다./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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