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구조조정 감상법

임승태 전 금통위원






조선·해운 분야의 구조조정에 대한 후유증이 채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176개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이 시작됐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이번 작업이 힘든 것은 당시와 달리 지금은 전 세계가 구조적 장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도 당면한 구조조정의 앞날에 대해 확실한 얘기를 할 수 없다. 단지 이제 막 시작이고 폭과 방식도 종전보다 광범위하고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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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구조조정은 이렇듯 어둡고 험한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길목마다 제대로 된 이정표가 필요하다. 이를 짚어보는 감상법을 생각해보면 먼저 구조조정 방향이 적확해야 한다. 앞으로 최소 7~8년간은 지금과 같은 총수요 부족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전제하에 이력효과(hysteresis effect)가 유발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수요 진작책을 강구하되 재무적 구조조정과 사업 구조조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이번 구조조정 작업에서 재정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재무 전문가 외에 다수의 당해 산업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여기에서의 감상 포인트는 구조조정 속도와 폭, 이에 상응하는 사회안전망 구축, 건강한 경기방어 방안, 소요재원 확보 방안, 그리고 구조조정 추진체제와 구성방식 등이 될 것이다.

둘째, 구조조정 기준이 뚜렷해야 한다. X축을 재무건전성으로, Y축을 성장성으로 하는 4분면표를 가지고 살펴보자. 제1분면에 놓인 기업군은 재무구조도 건실하고 성장성도 있으므로 통상적인 금융중개 기능이 작동한다. 제4분면은 성장성은 별로지만 재무건전성이 있으니 벌처펀드 등 시장을 통한 구조조정이 가능한 영역이다. 반면 성장성이 없고 재무적으로도 불량한 제3분면에 위치한 기업군에 대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용인적 대출에 빠지기 쉬운 금융기관에 대한 금융당국의 명확한 지도가 필요하다. 아울러 국가 기간산업 등에 대한 정책적 판단도 요구된다. 제2분면에 위치한 기업군은 재무적으로 불안정하지만 성장성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금융과 한국은행의 금융중개 지원대출 등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미래의 먹거리 기업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감상 포인트는 시장을 통한 구조조정 시스템의 작동 여부와 정책당국의 추진력, 유기적 공조체제 구축 여부이다.

마지막 포인트는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금융기관 구조조정 담당자에게까지 면책이 허용되는지다. 구조조정 성과에 대한 확신이 어려운 현 상황에서 결과를 두고 책임을 묻는다면 과연 누가 나설 수 있겠는가. 이들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내린 결정을 우리는 최대한 존중해줘야 하고 결과가 좋지 않다 하더라도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면책해줘야 한다. 임승태 전 금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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