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터키판 금 모으기 운동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프랑스·영국 등 승전국에 갚아야 할 전쟁배상금 1,320억 금화 마르크를 마련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나라가 폐허가 되고 재정마저 고갈된 상황에서 해결할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독일 정부는 고민 끝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프리츠 하버에게 이 임무를 맡겼다. 하버가 생각해낸 방법은 바닷물에서 금을 추출하는 것. 그의 이론에 따르면 1톤의 바닷물에서 200g의 금을 추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니 금 추출량은 고작 0.6g에 불과했다. 게다가 바닷물을 금으로 만들려면 어마어마하게 큰 공장과 비용이 필요했다. 독일 정부는 결국 이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은 무(無)에서 금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인간의 열정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았다. 1997년 환란 때 우리 국민이 보여준 ‘금 모으기 운동’이 그것. 1997년 12월 새마을부녀자회의 ‘애국 가락지 모으기 운동’에서 시작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금 모으기 운동’을 제안하면서 본격화한 이 운동으로 불과 1년 만에 227톤의 금이 모였다. 장롱 속 돌 반지부터 금니까지 351만명이 힘을 보탠 결과 무려 21억3,000만달러를 모을 수 있었다. 해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일시에 쏟아져나온 금 때문에 국제 시세가 폭락했고 같은 외환위기를 겪던 태국에서 금 모으기 운동을 따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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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율이 급등해 비상이 걸린 터키에서 ‘금 사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달러를 팔아 리라나 금을 사라”고 호소한 데 따른 것이다. 리라 가치를 보호하고 금 보유량을 늘려 환란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공공기관을 제외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은 모양새다. 경제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쿠데타 진압 후 공안 통치가 지속되면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탓이리라. 자발적 운동과 관제 캠페인이 가져오는 결과는 이렇듯 다르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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