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최재호 무학 회장 "저도주·별도 브랜드 등 위기때마다 승부수…부울경 넘어 글로벌 주류업체로 올라설 것"

■ CEO&STORY

저도주 돌풍을 일으켰던 무학 최재호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저도주 돌풍을 일으켰던 무학 최재호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


일본 교토 북부에 위치한 마이즈루(舞鶴)시는 ‘크루즈의 도시’로 불린다. 인구 10만명이 되지 않는 쇠락한 항구였지만 2012년부터 크루즈선 유치에 나서면서 연간 3만명의 크루즈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13만톤 이상의 대형 크루즈를 수용할 수 있는 접안 시설을 갖추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자 요즘 마이즈루 시민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어깨춤이 절로 난다.

우리나라에도 ‘춤추는 학’처럼 비상하는 기업이 있다. 경남지역 향토 소주업체로 시작해 수도권을 넘어 글로벌 주류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주류업체 무학(舞鶴)이 그 주인공이다. 87년 역사의 장수기업이자 영남권 소주 시장을 평정한 무학의 최재호(57) 회장은 “국내 시장에만 안주해서는 결코 100년 기업의 역사를 쓸 수 없다”며 “무학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주류업계를 넘어 국내 모든 제조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代 이은 경영으로 영남권 소주시장 평정

계열사 부도로 워크아웃 위기 맞았지만

영업망 늘리고 체질 바꾸자 점유율 껑충

최 회장은 올해 7월 다시 무학의 대표가 됐다. 지난 2013년 대표 취임 30주년을 맞아 전문경영인에게 자리를 물려준 지 3년 만에 복귀한 것. 대부분의 오너 경영인이 그렇듯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회사의 장기적인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만 해도 충분할 텐데 굳이 대표로 돌아온 최 회장의 행보에 주류업계는 적잖이 놀랐다.

경영실적이 악화된 것도 아니었다. 최 회장이 물러난 사이 무학의 연 매출은 2012년 2,181억원에서 2015년 2,958억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463억원에서 667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최 회장을 다시 출근하게 만든 이유는 의외로 단순명료했다.

“글로벌 주류기업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국내에서 아무리 성공하더라도 이제는 세계에서 인정을 받지 않으면 성장을 담보할 수 없어요. 물론 이 정도로 회사를 키웠으면 만족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많이 들어요. 하지만 주인이 바뀌더라도 회사는 생물처럼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무학의 최종 목표는 글로벌 주류기업입니다.”

최 회장은 국내 소주 시장의 산증인이다. 1965년 최 회장의 아버지인 최위성 명예회장이 창업한 무학은 최 회장이 대표에 취임한 1994년까지만 해도 경남 지역에 머물던 지방 소주업체에 불과했다. 1977년 도입된 정부의 자도주보호법이 든든한 울타리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1996년 자도주보호법 폐지를 앞두고 승부수를 던졌다. 1995년 출시한 알코올도수 23도의 ‘화이트’가 첫 선봉장이었다.

“출시 직전까지도 임직원의 의견이 엇갈렸어요. ‘소주는 25도’라는 공식이 30년 가까이 자리 잡았는데 저도 소주는 누가 봐도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업계 1위였던 진로조차 시도하지 못한 것을 지방 소주업체가 도전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죠.”

국내 최초로 선보인 저도 소주 화이트는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경남은 물론 부산과 울산에서도 품귀 현상을 빚으며 출시 1년 만에 1억병이 판매됐다. 단순히 알코올도수만 낮춘 것이 아니라 지금은 일반화된 녹색병과 돌려 따는 병마개도 최초로 도입했다. 회사명이 아닌 별도의 소주 브랜드를 내건 것도 화이트가 처음이었다.

화이트는 무학이 경남을 넘어 부산과 울산까지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1998년 IMF가 닥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내몰린다. 무학건설 등 계열사의 부도로 유동성이 악화돼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때 최 회장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다시 한번 발휘됐다.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연봉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워크아웃 졸업에 사활을 걸었다.

“무학은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는데 외부 요인으로 워크아웃을 신청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니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온 임직원이 저를 믿고 따라준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 덕분에 2년6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었죠. 남한테 돈을 빌리지 않는 무차입경영이 왜 중요한지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워크아웃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최 회장은 이후 텃밭인 경남을 시작으로 부산과 울산을 잇따라 공략하며 점유율 확대에 나섰다. 지방 소주업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지역에서 먼저 경쟁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영업망을 확충하고 마케팅 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업계 최초로 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체질 개선에 나섰다. 그 결과 현재 부산·울산·경남에서 무학의 소주 시장점유율은 80%에 이른다.


실패 제품은 포기하고 바로 신제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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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가장 많은 증류주 라인업 구축

23개국 수출망 확보…내년 중남미 공략

M&A도 추진해 ‘100년 기업’으로 도약



지방 소주업체로 승승장구하던 무학은 2006년 또다시 도전에 나선다. 알코올도수를 16.9도로 낮춘 ‘좋은데이’를 출시하고 여성 고객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알코올도수 20도 미만의 저도주를 준비하던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는 이번에도 무학의 선제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데이는 출시 10년 만에 20억병이 판매됐고 무학은 명실상부한 지방 1위 소주업체이자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를 잇는 국내 3위 소주업체로 올라섰다.

“고객들은 무학이 적재적소에 신제품을 출시해 성장가도를 달렸다고 생각하지만 실패한 제품도 많습니다. 2009년 출시한 ‘좋다카이’는 알코올도수 19.5%로 전통 소주와 저도 소주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제품이었지만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제품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신제품 연구에 바로 뛰어드는 것이 무학의 경쟁력입니다. 무학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증류주 제품을 지닌 주류회사라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죠.”

최 회장은 지난해 과일맛 소주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를 선보이며 수도권에도 진출했다. ‘지방 주류업체 무덤’이라는 수도권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올 3월에는 국내 1위 대형마트 이마트와 손잡고 ‘엔조이’까지 출시하며 다양한 변신에 나섰다. 아직 수도권 점유율은 4% 내외에 불과하지만 최 회장은 2020년 수도권 점유율 10% 달성을 자신한다.

“무학은 이미 2013년 서울지사를 설립하고 10명이었던 인력을 130명으로 늘렸어요. 다만 수도권은 국내 최대 소주 시장이기에 그만큼 경쟁도 치열합니다. 현재 서울 시내 음식점 10만곳 중 ‘좋은데이’를 취급하는 곳이 15%에 이릅니다. 단계별로 차근차근 밟아가면 점유율 10%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2020년 완공되는 충주공장이 수도권 공략의 전진기지가 될 것입니다.”

올 들어 최 회장은 무학의 글로벌 진출에 회사의 명운을 걸었다. 이미 전 세계 23개국에 수출망을 확보했고 내년에는 중남미 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다. 주력인 중국에서는 지난해 237만병을 판매했고 올해는 벌써 450만병을 넘어섰다. 현지 유통망 확대를 위해 수시로 해외 출장길에 오르지만 글로벌 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무학의 미래를 생각하면 피곤한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다고 최 회장은 덧붙였다.

“글로벌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90여년 전 무학 임직원은 100여명 남짓이었는데 지금은 700명이 넘습니다. 올해도 전국 각지에서 80여명의 신입사원을 뽑았습니다. 무학이 지방 소주업체의 위상에 안주했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죠. 필요하다면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도 적극 추진할 계획입니다.”

/사진=송은석기자

저도주 돌풍을 일으켰던 무학 최재호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


●최재호 무학 회장은

△1960년 경남 마산(현 창원) △1982년 경남대 경영학과 △1982년 ROTC 20기 육군 소위 임관 △1988년 일본 도카이대 경제학 석사 △1988년 무학 기획실장 △1994년 무학 대표 △2001년 창원대 경영학 박사 △2002년 마산 육상경기연맹 회장 △2002년 경남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2007년 경남 자원봉사센터 이사장 △2007년 경남 장애인 고용대책위원회 위원장 △2008년 무학그룹 회장 △2009년 한국 자원봉사센터 이사 △2011년 창원시체육회 부회장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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