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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커튼콜’ 장현성 “‘쉬리’ 출연료 50만원...황정민과 대학로에서 왕처럼 놀았죠”

보기 드문 일이었다. 영화 ‘커튼콜’의 언론시사회를 마친 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장현성은 갑자기 마이크를 들고는 “우리 영화는 상영관 수가 적어 영화를 보시려면 다소 수고를 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약간의 수고만 해주시면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새로운 감동과 재미를 드리겠다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라며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와 달라고 직접 부탁한 것이다.

장현성 배우가 직접 관객들의 발길을 독려해야할 만큼 영화 ‘커튼콜’이 처한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삼류 에로극단이 ‘햄릿’을 무대에 올리면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소동들이 쉬지 않고 웃음보를 자극하다 진한 눈물을 뽑아내며 만만치 않은 완성도와 재미를 보여주지만, 홍보비까지 다 합쳐 채 5억 원이 되지 않는 작은 영화가 설 곳은 없었다.

영화 ‘커튼콜’ 장현성 / 사진제공 = 봉봉미엘영화 ‘커튼콜’ 장현성 / 사진제공 = 봉봉미엘





비록 큰 흥행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커튼콜’은 장현성 배우에게는 매우 특별한 영화였다. 비단 장현성 배우 뿐 아니라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오랜 무명세월을 보내온 배우들에게는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는 장현성이라는 배우 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현성이 보낸 20대와 30대 초반의 연극배우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들어있었다.

“연극배우를 하던 시절에는 정말 하루 앞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꿈과 젊음, 열정이 있고 같이 무대에 서는 친구가 있어서 즐거웠어요. 주변에서는 그런 우리를 보며 ‘너 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러냐’고 걱정을 해요. 그런데 저는 한 달에 그 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연극배우로 살아가던 그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신났어요.”

“무명배우일 때 황정민이랑 영화 ‘쉬리’에 함께 출연했어요. 이방희(김윤진 분)가 죽은 후 이방희의 연인이었던 유중원(한석규 분)을 취조하는 장면이었죠. 당시 황정민하고 둘이서 창문도 내려가지 않는 고물 프라이드를 타고 양수리에 가서 하루 촬영하고 50만원이라는 돈을 받아왔어요. 당시 연극을 하던 저희에게는 말도 못 하게 큰 돈이었죠. 그 때 대학로에서 저랑 정민이가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왕처럼 놀았죠. 둘이서 번갈아서 후배들에게 술 사면서.”

영화 ‘커튼콜’에서 장현성은 대학 시절에는 셰익스피어도 씹어먹을 연출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대학로 지하 소극장에서 배우들이 옷 벗고 베드신을 연기하는 삼류 에로연극이나 연출하는 연극 연출자 ‘민기’를 연기한다. 비록 에로연극을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연출자인 ‘민기’의 캐릭터 역시 장현성과는 너무나 닮은 캐릭터였다.

“전 원래 학교에서 연출 지망생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민기’라는 캐릭터에 애정이 갔죠. 당시만 해도 대학로에서 연출이 되려면 연출을 10년 정도 따라다니며 양말과 속옷도 빨아주며 조연출 생활을 해야하던 시기인데, 전 도저히 그런 시절을 견디면서 연출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영화 ‘커튼콜’ 장현성 / 사진제공 = 봉봉미엘영화 ‘커튼콜’ 장현성 / 사진제공 = 봉봉미엘


“그 때 지금은 돌아가신 박광정 선생님이 ‘마술가게’로 백상 신인상도 받으며 핫하던 시기인데 갑자기 한 극단에 조연출로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시냐 했더니 극단 대표가 김민기 선생님이라고 해요. 그게 극단 학전이죠. 그러면서 박광정 선생님이 저한테도 배우 오디션을 한 번 볼 생각이 없냐고 권해서 우물쭈물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붙었어요. 그렇게 운명처럼 배우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대학로에 발을 들인 이후 10년 가까이 대학로 무대에 서던 장현성은 2000년대에 들어오며 조금씩 영화 속 조연배우로, 그리고 드라마 속 배우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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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 장현성이 가진 최고의 무기는 바로 선역과 악역 그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않은 이미지였다. 지난 1년만 봐도 장현성은 KBS 드라마 ‘어셈블리’와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강렬한 악역 연기를 선보였지만, SBS 드라마 ‘닥터스’에서는 정의감 넘치는 국일병원 부원장 ‘김태호’를 연기하며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배우의 얼굴을 세 부류로 나눈다고 하면 잘 생긴 부류에는 원빈, 현빈, 장동건 같은 배우들이 있고, 개성적으로 생긴 부류에는 유해진, 오달수 선배 같은 배우들이 있어요. 그 가운데 저희 같은 스타일이 있는데, 흔히 길거리형이라고 해서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에 다섯 명 중에 서 있으면 크게 기억이 안 남는 인상이라고 할까요? 저나 설경구 선배, 한석규 선배, 김상중 선배, 이성재 같은 배우들이 그런 인상이죠. 저는 딱 중간에 있는 평범한 얼굴이라서 선역이나 악역이나 시각적으로 어색하지 않게 보여지긴 해요.”

‘커튼콜’에서 장현성은 극 중 배역이 연극 연출가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극 중 연극배우로 등장하는 후배 배우들을 이끌고 통솔하는 진짜 연극 연출가 같은 포지션을 자청해서 맡았다. 그래서 장현성은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류훈 감독에게 한 달 정도 실제 연극 작품을 올리듯 배우들이 호흡을 맞춰볼 수 있게 연습실을 마련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영화에 들어가기에 앞서 연극 연습실을 부탁한 것은 영화 속 연극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실제 영화 촬영에서 시간이나 제작비의 누수가 클 것 같아서였어요. 저희 영화는 알다시피 제작비가 적었기에 그런 실수가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고, 또 감독님은 촬영감독님하고 계속 영화의 기술적인 면을 고민해야 했기에 제가 연습진행부터 인원관리까지 도맡게 된 거죠.”

영화 ‘커튼콜’ 장현성 / 사진제공 = 봉봉미엘영화 ‘커튼콜’ 장현성 / 사진제공 = 봉봉미엘


‘커튼콜’을 마친 지금 장현성의 가장 큰 걱정은 ‘커튼콜’이 과연 열악한 배급사정 속에서 얼마나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다. 장현성에게는 ‘커튼콜’이 그의 20대 연극배우 시절의 추억이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묻어 있는 영화이기에, 그리고 남다른 책임감으로 만들었기에 정말 ‘커튼콜’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마지막까지 굳게 강조했다

“제가 애정이 있다고 해서 잘 만들어지지 못한 영화를 강권할 수도 없고, 저도 재미는 없는데 의미만 있는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커튼콜’은 재미도 있고 감동과 의미도 있고, 형식적으로도 새로운 시도로 지평을 넓힌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영화를 누군가는 봐주셔야 하는데 한국의 배급현황은 우리 같은 영화에는 기회를 열어주지 않거든요. 그래서 전 ‘커튼콜’이 잘 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고 싶어요. 그러다보니 회사에 부탁해 직접 투자에도 참여하게 됐고, 언론시사회에서도 그런 말씀을 드린 거에요.”

“그동안 배우로서 인생의 대표작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제 인생의 대표작은 이제 ‘커튼콜’이에요. 영화를 제작하며 다 같이 나눈 시간들, 그리고 같이 고민한 시간들. 그런 것들을 지나 드디어 이 영화가 완성됐을 때의 감동. ‘커튼콜’에는 제 개인의 시간이 오롯이 다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원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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