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준조세와 피해자 코스프레

김현수 증권부 차장

증권부 김현수




취업 시험에 ‘준조세(準租稅)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나왔다. ‘①세금은 아니지만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 이런 식의 객관식이라면 채점자가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주관식에 답의 내용에 따라 1~3점까지 점수를 준다면 난해하다. ‘준조세는 세금과 다른 부담금으로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기부금 등이 있다’라는 답을 채점한다면 몇 점을 줘야 할까.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법적 부담 의무가 없는’ ‘비자발적 부담금’이라는 정의와 국민연금, 사회보험료 등과 과밀부담금, 환경개선부담금 등 좀 더 포괄적인 예들이 들어가지 않아 깐깐하게 본다면 1점 정도밖에 줄 수 없다. 하지만 시류를 반영해 3점 만점을 준다고 해도 크게 문제 삼기 어렵다. 대가를 바란 뇌물인지를 놓고 다투고 있는 돈으로 기업이 생산비용도 세금도 아니지만 부담해야 하는 금전 지급이라는 점에서 최순실이 벌린 손에 쥐어진 돈도 기업에는 준조세인 셈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2차 청문회에서 준조세가 새삼 주목받았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왜 우리 기업은 정부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느냐, 차라리 준조세를 폐지하고 법인세를 올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구 회장은 “그럼 국회가 법을 만들어 준조세를 없애달라. (법인세 인상은) 찬성하지 못한다”고 답을 했다. 내는 기업 총수도, 걷어서 나랏일을 하는 국회의원도 불합리하다고 여기면서 준조세는 정부가 바뀌어도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만 왔다. 지난해 기업들이 낸 준조세(사회보험료 제외)는 16조4,071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2년보다 24.9% 증가했고 법인세(45조원)의 36%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기업이 정부에 잘 보이려고 낸 기부금(2,164억원)은 물적 지원에 들어간 후원금까지 포함하면 1조원을 넘어선다. 단순 계산해 야당 논리대로 법인세를 올렸을 때 늘어나는 세수의 11.7%가 근거를 찾기 어려운 준조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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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준조세를 줄이고 법인세를 늘리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인세를 인상한다고 준조세가 없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업들 대부분이 회의적이다. 청문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준조세의 법인세 전환에 원론적인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도 “그런데 그런 결과가 나올지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준조세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 또는 타의에 의해 정부나 각종 재단에 내는 돈은 소외계층 돕기나 청년 실업 문제 해결 등 세금으로는 부족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사용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돈이 목적과 달리 사용되고 알게 모르게 대가를 수반해 정경유착의 고리가 된다는 점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는 권력이 먼저 끊어야 한다. ‘준조세청탁금지법’ 같은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하자. 그리고 기업은 이제 그만 피해자 코스프레를 멈춰야 한다.

hskim@sedaily.com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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