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줄기세포 치료 활성화 한다며...'맞춤형 특혜법안' 미는 정부

국회 발의 '재생의료법' 2건 사실상 정부 입법

'식약처 허가 없이 전문가 심의로 치료 가능' 논란

줄기세포 전문가·기업 "차병원 등 대형병원만 유리

靑 주도설에 대놓고 반대도 못해...국회서 규명해야"

정부가 차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의 줄기세포 치료 활성화를 위해 사실상의 ‘맞춤형 특혜 법안’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차병원은 민간기관으로는 이례적으로 정부 업무보고를 유치하고 숙원사업이던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를 승인받는 등 현 정권에서 눈에 띄는 혜택을 받아 논란을 빚고 있는 곳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첨단재생의료의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라는 제정법이 두 건 발의됐다. 김승희 새누리당 의원과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올 6월과 11월 발의했지만 모두 보건복지부가 의원실에 요청한 사안으로 사실상 정부 입법이다. 복지부와 청와대는 이미 지난 2014년부터 재생의료법의 입법을 추진해왔다.


재생의료법은 △병·의원들이 사각지대에서 편법으로 줄기세포 시술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일정한 시설·장비·인력을 갖춘 병원이 줄기세포 치료를 할 경우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허가하도록 한다는 것 등 두 가지가 골자다. 이 중 후자의 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치료제를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시험과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통상 10년 넘게 걸린다. 줄기세포 치료도 환자의 세포를 별다른 조작 없이 투여하는 경우 외에 배양 등 조작 과정이 들어가면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면 이번 재생의료법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는 줄기세포 치료까지 정식 허가 절차 없이 전문가 심의만으로도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 이 법안이 발의되자 줄기세포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줄기세포학회 등 관련 전문가들과 기업들은 국회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이들은 법안 검토서에서 △환자 투여 전에 확인해야 할 필수 검증 절차조차도 거치지 않아 국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정상적 경로로 치료제를 개발 중인 업체들의 의지를 꺾어 산업 생태계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줄기세포 전문업체 관계자는 “대부분 업체들은 재생의료법이 ‘대형병원만 배 불리는 법’이라고 우려하지만 청와대 추진 법안이라는 얘기가 많아 대놓고 반대를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재생의료법에는 치료비용을 환자에게 전가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승희 의원 발의안에는 ‘재생의료심의위원회에서는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의 적절성을 심의한다’고 돼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재생의료법은 현재 편법으로 이뤄지는 줄기세포 시술을 합법화하겠다는 얘기이자 그 시술에 대해 환자에게 돈까지 받겠다는 악법”이라며 “전문가 심의위원회를 거친 줄기세포 치료에서 환자라도 죽으면 누가 책임질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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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의료법은 줄기세포 치료에 관심이 많은 대형병원들만 찬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안 추진 과정에서 기업·중소병원 등의 반대가 있었던 것은 맞다”며 “3~4개 대학병원에서는 재생의료법의 ‘병원 내 신속적용제도’가 필요하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정부는 의원실을 통해 법안 제정을 밀어붙였다. 복지부는 줄기세포 등 첨단재생의료 분야는 선진국에서도 정식 허가 절차 없이 환자에게 적용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 재생의료법은 식약처 허가 절차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대학병원이 학술적 목적으로 하는 ‘연구자 주도 임상’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힌다. 연구자 주도 임상이 현재 상업용 임상과 같은 엄격한 조건으로 운영돼 활성화되지 않고 있으므로 문턱을 낮춰주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럽의 경우 ‘병원면제제도(hospital exemption)’를 통해 일부 재생의료 치료에 대해 허가 절차를 생략하고 있지만 면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각국의 관할 관청’이다. 전문가 위원회라는 ‘민간’이 치료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한국 재생의료법과 차원이 다르다.

또 연구자 주도 임상 활성화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의 연구 임상 제도를 개선하면 될 문제를 별도의 허가 트랙을 만들어 해결하겠다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재생의료법은 대형병원 전반에 유리한 법안이지만 줄기세포 연구에서 가장 앞선 차병원의 입김이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차병원의 여러 특혜 의혹을 국회 등에서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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