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가상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기회이며 위기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기술과 제도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이 드론·자율차·사물인터넷·웨어러블·원격의료·인공지능 등 거의 모든 4차 혁명의 핵심 산업에서 중국에 뒤진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규제의 결과라 단언한다. 헬스케어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 최대 산업은 헬스케어 산업이다. 한국의 대표격인 반도체 산업 규모의 20배, 조선 산업의 60배가 넘는 규모다. 6조달러가 넘는 전 세계 최대산업이 노령화와 웰빙(well-being) 수요의 확대로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금융·교육과 더불어 미래 3대 주력 산업이 될 헬스케어 산업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추진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산업 현황을 살펴보자.
필자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의료 데이터를 연결하고 지능화하는 산업’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헬스케어는 질병을 다루는 의료와 건강을 다루는 웰니스로 구분될 수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규제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가들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한 문장으로 대변된다. 바로 한국 기득권의 진입 장벽과 정부의 지나친 사전 규제 때문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원격관리의료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기술을 선도해 개발했으나, 대부분 국가들이 시행 중인 지금도 한국은 표류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수조원에 달하는 비용 절약을 이룩하고 개인 차원에서는 편리하고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이해관계로 정식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기득권의 이권 수호 논리에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원격관리의료는 사전 진단이 아니고 진단된 질병의 사후 관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2시간 이동해 3분간 얼굴 보여주고 오는 3차 의료기관 중심의 관리 의료에서 혈당과 혈압 측정 기록에 기반한 1·2차 의료기관 중심의 원격 관리로의 이전은 적정한 의료비 보상만 이뤄지면 모두에게 좋은 제도가 된다. 우리는 15년의 세월을 낭비하며 세계를 선도할 산업을 만들 기회를 놓친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근간이 되는 의료 기록의 보관을 병·의원 내로 국한하는 규제가 지난해까지 한국의 산업 발전을 저해해왔다. 미국은 여러 병원의 의료 기록을 통합한 개인의료기록(PHR)의 클라우드 보관이 원칙인데, 우리는 이를 규제로 금지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발전을 막아온 것이다. 올해 5월 규제가 일부 완화됐으나 실상은 클라우드 의료 기록 보관은 허용하되, 물리적 분리를 해야 하고 연결망은 고가의 전용선을 사용하라는 조건이 붙어 결국 규제 완화는 시늉에 그치게 됐다. 이제 다시 발표된 규제 완화도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는 당국의 여러 가지 사전 검사를 통과하라는 조건이 붙어 결국 아마존·구글과 같은 글로벌 서비스는 이용 불가능한 규제가 됐다.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는 글로벌 서비스가 돼야 하기에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글로벌 클라우드 업체를 이용해야만 하는 구조다. 한국의 KT와 SK텔레콤의 클라우드 서비스로는 실제 제대로 된 글로벌 서비스는 어렵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숱한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은 사업을 접거나 한국을 떠나게 됐다.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사업이 범법이라는 상식 밖의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절망에 빠졌다고 한다. 한 웨어러블 혈압측정 서비스 기업은 아예 회사를 미국으로 이전해버리기도 했다.
기득권 보호를 위해 새로운 혁신의 씨앗이 발아도 못하게 하는 것은 비단 헬스케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교통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산업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고 그 결과가 한국의 저성장 양극화의 원인이 된 것이다. 현실과 가상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의 최우선 과제는 각종 진입 규제 개혁이다.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KAIST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