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경영’에서 입사 20년 만의 ‘홀로서기’로.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15일 대구광역시 동구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서 열린 그랜드 오픈식에 참석, 입사 이래 최초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으로 승진한 정 총괄사장이 현장 경영에 나선 것은 사장 취임 이후는 물론 입사 20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정 총괄사장은 이 자리에서 “현지 법인으로 출발하는 대구 신세계가 대구·경북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최고경영자(CEO)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이날 초대형 백화점의 개점만큼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정 총괄사장의 존재감이었다. 짧은 검정색 코트와 바지 차림의 그는 쌀쌀한 날씨 속의 야외행사에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당당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아 행사의 ‘주빈이자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날 정 총괄사장의 모습은 국내 대표 여성 CEO이자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을 꼭 빼닮아 더더욱 주목받았다. 실제 그는 예전부터 이명희 회장의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성격으로 ‘리틀 이명희’라고 불려 왔다. 현장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경영자의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성격은 물론 겉모습까지 어머니의 젊은 시절 그대로였다”며 “추운 날씨 속에서도 모친처럼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행사를 주도해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평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날 정 총괄사장의 ‘데뷔’는 오빠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입사 20년 만의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 초 강남점 증축을 시작으로 센텀시티몰 증축(3월), 면세점 명동점 오픈(5월), 김해점 오픈(6월), 스타필드 하남점 개장(9월)의 뒤를 잇는 신세계그룹의 ‘6대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은둔의 경영자’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여성 CEO로 진일보했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말 백화점 총괄사장으로 취임한 후에도 정용진 부회장을 보좌하며 공식 석상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자신 있는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대형 백화점이 문을 열며 책임자로서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된 것”이라며 책임자로서 정 총괄사장의 대외 행보가 지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신세계그룹은 백화점과 이마트 간의 계열 분리 속에 ‘정유경 체제’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지난해 말 정 총괄사장은 백화점·호텔·면세사업을 담당하는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올 4월에는 정 부회장이 신세계 지분 7.3%를 정 총괄사장에게 넘기고 정 총괄사장은 이마트 지분 2.5%를 정 부회장에게 매각하는 등 남매간 주식 교환도 마무리했다. 이후 올 한 해 동안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는 상호 전방위 확장에 나서며 남매간 선의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3세 경영’의 발판을 만들기 위한 모친의 의중에 따라 남매가 그룹 사업을 나눠 책임지는 형태지만 경영 성과에 따라 구도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 총괄사장의 ‘홀로서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국내 최대 상권 중 하나로 롯데, 현대, 현지 백화점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대구가 정 총괄사장 평가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신세계로서는 40년 만에 고향이나 다름없는 대구 재입성이라 정 총괄사장의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 증축, 면세점 오픈, 김해점 및 대구점 오픈 등 어느 해보다 비약적 발전을 이뤘지만 정 부회장 아래서 디자인된 터라 정 총괄사장의 경영능력이 발휘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 부회장이 대형마트 위기 속에서 차별화된 콘텐츠 출시 등 걸출한 성과를 낸 것처럼 정 총괄사장 역시 경영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