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사임당전> 생계 방편으로 자아실현…조선의 워킹맘, 신사임당

■정옥자 지음, 민음사 펴냄



‘풀이여 벌레여 그 모양 너무 닮아, 부인이 그려 낸 것 어찌 그리 교묘할꼬, …(중략)…, 채색만을 쓴 것이라 한결 더 아름다워, 그 무슨 법인가 무골법이 이것이네’(조선 숙종이 사임당의 ‘초충도’에 부친 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알려진 사임당 신씨는 그림에도 능했다. 그의 작품은 대다수가 초충도(草蟲圖·풀과 벌레)인데, 들에서 관찰한 꽃과 풀과 벌레, 채소 등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물론 신사임당의 예술세계가 여유로운 안방마님으로서 귀족의 호사 취미로 인해 생겼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문화사의 권위자인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간 ‘사임당전’에서 신사임당의 숨겨진 이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임당의 예술 세계는 시와 글씨, 그림과 자수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그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작품은 그림이다. 사임당에게 자수는 살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림은 자수를 위한 수본이었다. 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 대다수가 초충도인 것은 당시 소비자인 규방의 아낙네들이 선호해 안방에 걸어두는 화목이 초충도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임당의 예술 활동은 한편 생활비를 버는 생활수단이기도 했고, 한편 고단한 삶의 한 줄기 위안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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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강릉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한량 남편과 결혼하면서 고단한 삶이 시작됐다. 남편 이원수는 말년에야 한미한 관직을 음직으로 얻었을 뿐 평생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 사임당은 홀로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친정·시댁 식구들을 돌보고 자녀들을 길렀다. 틈틈이 어려운 형편에 보태기 위해 한 것이 바느질과 자수였다.

저자는 조선을 지나치게 경직된 사회로 보는 인식 때문에 사임당에 대한 평가가 온당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현모양처였느냐 예술가였느냐는 이분법적 논의는 사임당을 정확히 보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사임당은 결혼생활의 성공과 자아실현을 함께 이룬 전통시대 성공한 ‘워킹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성 선비의 전범이라는 말이다. 2만2,000원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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