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외로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16일 모친의 빈소가 마련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사진제공=대한항공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16일 모친의 빈소가 마련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사진제공=대한항공




‘행복’


올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그룹의 핵심가치 중 하나로 행복을 언급했다. 항공수송업이 여행과 만남, 물품 전달을 통해 고객과 이웃에게 행복을 전하는 것임을 다시금 되새기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올해 조 회장에게는 행복보다 시련과 역경이 이어졌다.

연초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한진칼과 정석기업이 상호출자를 해소하고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 지었다. 임원인사에서는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등 승계 작업도 순조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3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과 회장 비난 스티커 투쟁 등으로 고난이 시작됐다. 조종사 노조는 사회 통념과 어긋나는 37%의 임금 인상을 주장했고 파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고난은 올 4월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이었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에 있어 모태와도 같은 기업이다. 조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없이 존재할 수 없다”며 1978년 2차 오일 쇼크나 1984년 미국 신해운법 발효에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대한민국을 세계 6위의 해운강국으로 발돋움 시켰다. 조 회장이 2014년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진해운을 전격 인수해 월급 한푼 받지 않고 1조원이 넘는 돈을 직간접 지원하며 경영 정상화에 매달린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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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업은행 등 금융당국은 한진해운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을 요구했다. 사재를 더 내놓든지 아니면 경영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해달라며 압박을 시작했다. 본업인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한진해운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경영권을 포기했다. 한진해운의 경영을 맡았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시절 무리한 확장 정책 등에 근본적 원인이 있었음에도 채권단은 조 회장이 사재를 내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며 탐욕의 아이콘인 것처럼 수모를 겪었다. 최근 정부가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무리하게 ‘한국 해운업’을 붕괴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 회장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줬다면 분위기가 달라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는 “생존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에 무작정 돈을 퍼부을 수는 없다”며 구조조정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해운업 전문가들은 “산업 현실을 모르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금융 논리로만 칼자루를 휘둘렀다”고 지적한다.



올해 5월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도 사퇴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1년 10개월간 물심양면으로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지원해왔다. 대한항공 핵심 간부급 임원 20여명을 위원회에 파견해 관련 업무를 챙기게 했고 대한항공 서소문 빌딩에 조직위 사무실을 제공하기도 했다. 바쁜 일정에도 짬을 내 서소문 빌딩에 들러 위원회 현안을 보고 받고 직접 업무를 챙겨왔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밝혀진 내용을 보면 조 회장의 사퇴가 당시 비선실세의 압력과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압력 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최순실씨의 땅을 조 회장이 매입해주지 않고 각종 이권에 대해 조 회장이 거부하면서 위원장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조 회장은 정부의 잘못된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는 평가로 받으며 동정 여론이 펴지기도 햇다.

올해가 가기 전 조 회장은 또 한번의 시련을 겪고 있다. 모친 김정일 여사(향년 93세)가 숙환으로 15일 별세한 것. 16일 빈소가 마련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에서 조 회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새벽부터 빈소를 지키고 있다. 오후 진행된 고인의 입관식 전후에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 회장은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에 대한 국정조사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어머니를 챙겨왔다. 평소 고인은 자식들에게 인성에서는 검소와 성실을, 일에서는 프로를 강조했다. 자식을 엄하게 교육 시켰고 선진지식을 습득하도록 조기 유학을 보내 자식들에게 전문가의 길을 걷도록 했다. 사업가이기 이전에 사람이 되야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기도 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6일 모친의 빈소가 마련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침통한 표정으로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과 함께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6일 모친의 빈소가 마련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침통한 표정으로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 부사장과 함께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조양호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현재의 조건에서 행복을 찾아라.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어머니께서 주었다고 말했다. 조 회장에게 시련의 2016년은 이제 끝나고 있다.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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