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산업이 붉게 물드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수입 중간재 대신 자국 제품을 사용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이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산업구조는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대중 수출의 70% 이상을 중간재 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소비재와 서비스재 수출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가공무역 비중은 2005년 44.2%에서 지난해 27.1%로 17.1%포인트 낮아졌다. 가공무역이란 해외에서 원재료와 부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해서 다시 수출하는 방식의 무역을 말한다.
중국 가공무역 비중이 낮아진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강한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가공무역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등 장려책을 폈다. 하지만 1999년부터는 자국 중간재 산업 육성을 위해 가공무역 금지 기준을 신설한 뒤 규제를 강화해왔다. 지난해 기준 가공무역 금지품목 1,871개, 제한품목은 451개에 달한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중국의 중간재 현지 조달률은 껑충 뛰었다. 2000년 32.7%에 불과했던 현지 조달률은 지난해 기준 44%에 육박한 상황이다. 이에 맞춰 중국의 중간재 수입 비중도 2000년 63.9%에서 지난해 53.4%로 10.5%포인트 줄었다.
문제는 중국의 홍색공급망 확대가 우리나라에는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전체 수출액의 약 25%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간재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77.6%에 달한다. 일본은 중국 수출 가운데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 69.9%에서 지난해 65.8%로 줄었다. 미국은 50.3%에서 41.7%로 유럽연합(EU)도 52.1%에서 44.8%로 감소했다. 반면 일본은 규모가 확대되는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해 소비재 수출 비중을 2005년 4.3%에서 지난해 9%, 미국은 5.6%에서 13.4%, EU는 7.8%에서 25%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이 기간 우리는 중간재 수출이 76.3%에서 77.6%로 되레 증가했고 소비재 수출은 2.3%에서 4.1%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국이 산업에서 자급자족을 높일수록 우리나라가 가장 피해를 보는 구조인 셈이다.
새로 들어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높은 수준의 보호무역을 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악재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우리가 중국에 수출한 중간재 가운데 5%가 재가공돼 미국으로 다시 수출된다. 한국은행은 미중의 갈등이 깊어지면 우리 전자와 반도체, 석유화학 등 소재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했다.
바뀌는 세계 통상 지형과 중국의 무역구조에 맞춰 우리도 소비재와 서비스 제품의 대중 수출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진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정부는 중국의 서비스 시장 개방과 비관세 장벽 해소 등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이행 상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표 수혜 품목인 식품과 화장품, 생활용품 등의 수출이 확대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