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토요와치] 최순실도 썼다는 판도라의 상자...가로 30㎝·세로 20㎝ 은밀한 욕망을 담다

은행 대여금고의 세계

철문 뒤 가장 깊숙한 공간에 위치

보안성 뛰어나고 천재지변에 안전

4대시중銀만 47만개...꾸준한 증가

5만원권 기준 12억 정도 들어가

자산가들 귀중품 보관 비밀금고서

비리혐의자 검은돈 은신처로 이용

檢 압수수색으로 민낯 드러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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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걱정 없이 귀중품을 맡겨둘 완벽히 안전한 곳 어디 없을까.”

고액의 현금이나 중요한 문서가 손에 들어왔을 때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생각이다. 믿을 것은 나 하나뿐이지만 품속에 지니고 다니기에는 너무 불안하다. 집이나 회사는 도난과 화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집에 금고를 들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고 가족들의 눈치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은행의 대여금고다.


은행 대여금고에 다시 한번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국정 농단의 주역 중 한 명인 최순실의 은행 대여금고를 검찰이 압수 수색해 회사 운영 서류와 보석류, 계좌 입출금 전표 등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자산가들이 중요한 물품을 은밀하게 보관하기 위해 종종 이용한다는 대여금고. 그 세계를 알아봤다.

대여금고란 은행이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영업점 내부에 마련한 금고다. 대개 화재나 도난 등에 대비해 물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며 해외여행이나 장기 출장 시에도 사용되고 있다. 은행의 가장 깊숙한 공간에 마련돼 있으며 대개 철장 또는 철문이 세워져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도난이나 화재를 걱정하는 고객 또는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고객들이 주로 이용한다”며 “외부 화재는 물론 지진 등 천재지변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돼 최근 잇따른 지진에 관심이 다시 한번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4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KEB하나·우리)의 대여금고 수는 올해 기준 47만여개로 최근 수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대여금고는 지난 2014년 말 8만3,000개에서 지난달 말 9만개로 늘었다. 지점 수 기준으로는 KB국민은행 800여개 지점, 신한·KEB하나는 780여개 지점, 우리은행은 720여개 지점에 대여금고를 두고 있다.

2415A16 대여금고 이용 방법


대여금고는 원칙적으로 해당 은행 고객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용료는 그리 비싸지 않다. 은행이 수익을 위해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 은행 및 금고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보증금 5만~60만원(돌려받음)에 연간 수수료 1만~5만원을 내면 빌릴 수 있다.


다만 지역에 따라 금고 수가 충분하지는 않은 탓에 예금 잔액이 1억원 이상인 VIP 고객들이 암암리에 우선권을 부여받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에 따라 대여금고 이용률이 높은 자산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이용 대기번호도 주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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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금고의 크기는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대여금고는 폭 30㎝, 높이 20㎝ 정도다. 이 정도 크기에는 5만원권 기준으로 12억원 정도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고 종류는 예전에는 열쇠로 개폐하는 수동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들어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전자식이나 정맥이나 지문 등 생체인식 시스템으로 바뀌는 추세다.

보안성은 매우 높다. 가장 구형인 수동식도 직원과 고객이 열쇠 두 개를 각각 꽂아야 금고가 열린다. 또 열쇠를 잃어버리면 대여금고 자체를 뜯어내야 한다고 전해진다.

대여금고 사용은 평일 은행 영업시간 내에만 할 수 있다. 다만 미리 전화해서 양해를 구한 뒤 영업시간이 조금 지나고도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은행 관계자는 전한다.

보관품은 비상금과 골드바 등 자산이나 다이아몬드 반지, 고가 시계, 황금열쇠 등 귀중품이 주를 이룬다고 은행 관계자들은 전한다. 또 유가증권, 부동산 문서, 유서 등 주요 서류들도 간혹 보관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무엇을 넣는지는 해당 고객만이 알 수 있다. 대여금고 이용 시 은행 직원이 참관하지 않으며 내부에 폐쇄회로(CC)TV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대여금고에 있는 물품이 외부로 알려지는 예외적인 때도 있다. 바로 경찰이나 검찰이 압수수색 했을 때다. 대여금고는 비리 혐의자의 자금은신처로 종종 이용되기에 압수수색 1순위 대상이다. 압수수색 영장을 받은 경찰이나 검찰은 고객의 동의가 없더라도 금고를 열어볼 수 있다.

압수수색을 통해 드러난 대여금고 물품은 실제로 다양했다. 2013년 검찰이 열어본 전두환 일가의 대여금고에는 예금통장 50여개와 금·다이아몬드 등 귀금속 40여점이 들어 있었다. 2014년에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 입법로비 의혹을 받은 신학용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대여금고에서는 뭉칫돈이 발견됐으며 올해 들어서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100억원대의 부당 수임료를 챙긴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최유정 변호사 대여금고에서 현금과 수표 13억원이 나왔다. /조권형·이주원기자 buzz@sedaily.com

조권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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