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바이오

[주목받는 저체온요법] 뇌·심근경색 환자 등 뇌손상 줄여준다

머리뼈 못 여는 중증 뇌경색 노인 등

대사기능 떨어뜨려 뇌손상·사망률↓

심장 멎었던 환자 심장수술 등 할땐

저산소·혈류차단 상태서 오래 견뎌

신생아 허혈성 뇌증 치료에도 활용

뇌성마비·청각장애 등 후유증 줄여

심한 뇌부종이 동반된 60세 이상 중증 뇌경색(허혈성 뇌졸중) 환자에게 약물치료와 함께 저체온요법을 쓰면 사망률을 18%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첫 신경계 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분당서울대병원의 한문구 신경과 교수팀이 저체온요법과 신경계 중환자 집중 치료를 병행한 결과다. 저체온요법 사망률 18%는 선진국에서 같은 질환으로 수술 받은 60세 이상 연령층 사망률(30~50%)의 절반 수준이다.


저체온요법은 심근경색증·뇌경색 등으로 멎었던 심장이 심폐소생술로 다시 뛰게 됐지만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의 뇌손상 방지 등을 위해 쓰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받아서 유명해졌다. 미국심장학회와 유럽심폐소생술위원회에서도 권고한 요법이다.

한문구(가운데)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저체온요법을 시행하는 중증 뇌경색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분당서울대병원한문구(가운데)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저체온요법을 시행하는 중증 뇌경색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분당서울대병원




◇뇌부종 심한 중증 뇌경색 사망률 18%로 낮춰= 환자의 몸에 체온조절장치와 연결된 패드를 부착하거나 쿨링매트, 섭씨4도의 식염수 정맥투여 등을 통해 체온을 정상(36.5도)보다 낮추면 뇌 등 각종 장기의 대사 기능이 떨어져 뇌손상을 줄이거나 저산소·혈류차단에 견딜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뇌경색은 뇌혈관이 막혀 뇌 조직이 괴사하는 질환이다. 특히 중증 뇌경색은 뇌가 매우 빠르고 심하게 붓는 뇌부종 때문에 머리뼈를 열어(두개절제술) 뇌압을 낮추지 않으면 뇌의 일부가 본래 위치에서 벗어나는 뇌탈출까지 일어나 약물치료를 해도 심각한 뇌 손상으로 70% 이상 사망한다.

하지만 심장·폐질환 등을 앓거나 나이가 많으면 마취를 하고 머리뼈를 열어 뇌압을 낮출 수 없다. 살아남더라도 심각한 뇌 손상과 신경학적 합병증으로 ‘식물인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가 되기 십상이다. 60세 이상 연령층의 경우 중년층보다 수술 중 사망률이 높고 수술 후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로 회복하는 비율도 낮아 적지 않은 환자 가족들이 수술을 거부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선진국의 경우 심한 뇌부종을 동반한 60세 이하 중증 뇌경색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사망률이 25% 수준으로 떨어진다. 다만 생존자 중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우는 50% 이하다.


◇“중환자 집중 치료 시설·인력 갖춘 곳에서”= 심장이 멎으면 각종 장기에 산소·영양을 공급하는 피가 돌지 않아 세포가 죽기 시작한다. 특히 뇌세포는 심장이 멈추고 4분가량 지나면 파괴되기 시작하고 독성물질도 생겨난다. 심폐소생술로 심장이 다시 뛰게 되면 피가 성난 파도처럼 엄청난 압력으로 들이닥치고 뇌 손상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왕성하게 생성된다. 그래서 뇌 조직이 손상되고 환자가 사망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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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뇌경색 환자 등에게 약물치료와 저체온요법을 병행하면 뇌부종을 가라앉히고 뇌탈출 위험,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뇌 손상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 생성도 억제된다.

한 교수팀이 쓰는 저체온요법은 응급실 등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저체온요법과는 약간 다르다. 일반적인 저체온요법은 차가운 식염수 주입 등을 통해 체온을 32~34도까지 떨어뜨려 24시간가량 장기 손상 회복 치료를 한 뒤 체온을 조금씩 올려준다. 그러면 혼수상태에서 벗어난다.

반면 한 교수팀은 3일가량(평균 77시간) 33도의 저체온을 유지한 뒤 약 이틀에 걸쳐 체온을 조금씩 올려주는 방식을 쓰고 있다. 뇌손상을 최소화하고 저체온요법이 길어질 경우 합병증인 폐렴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감안한 타협점이다. 한 교수는 “중증 뇌경색 치료는 수술이 기본이지만 수술을 할 수 없거나 수술을 해도 사망률이 높은 고령자 등에게는 저체온요법이 사망률을 낮추고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며 “마취가 필수인 수술과 달리 내과적 치료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중증 뇌경색 환자에 대한 저체온요법은 신경계 중환자 집중 치료 시설·인력을 갖춘 곳에서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95세 노인 체온 28도로 낮춰 심장 수술시간 확보=서울성모병원은 지난 19일 세 가지 심장질환을 앓는 95세 노인 이모씨에게 저체온요법을 써서 한꺼번에 수술했다. 숨이 찬 증상으로 3년 전부터 약물치료·단기입원과 주사요법으로 버텨왔지만 더이상 효과가 없어서다.

수술 전 정밀검사에서 이씨는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 역류하지 않게 막아주는 대동맥 판막이 닫히지 않는 폐쇄부전증, 심장의 바로 위쪽 대동맥이 언제 파열될지 모를 정도로 넓어진 증상, 심방과 심실이 교대로 수축하게 하는 신호전달 체계에 이상이 생겨 심장 기능이 떨어지고 뇌졸중 위험이 6배 이상 높아지는 심방세동부정맥 진단을 받았다.

김환욱 흉부외과 교수팀은 고령인 환자의 안전을 고려해 체온을 28도로 낮추는 중등도 저체온요법을 썼다. 저산소 상태와 혈류차단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체온을 낮추는 동안 낡은 심장판막을 인공조직판막으로 바꾸고 비정상적인 심장 내 전기신호 전달 통로를 차단·격리시켰다. 이어 지름이 5㎝ 이상으로 넓어진 대동맥 부위를 인조혈관으로 바꿔줬다. 수술은 4시간 만에 끝났고 이씨는 병실을 돌아다니며 회복운동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고령이면 동반질환도 많고 인체조직의 탄력이 약해 절개·봉합 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며 “이씨처럼 심장 외의 건강 상태가 좋으면 적극적인 수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저체온요법은 출생 후 혈류 저하로 뇌경색과 비슷한 ‘저산소성 허혈성 뇌증’이 생긴 신생아 치료에도 쓰인다. 체온을 34.5도로 낮춰 72시간 치료한다. 사망률(15~25%)을 낮추고 뇌성마비, 간질, 발달·청각장애 등 신경학적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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