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년사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87년 체제 해체와 4차 산업혁명의 도래

국가 시스템 개혁과 신성장동력 발굴을

이제 정유년이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새로움이 갖는 기대와 희망보다 오랫동안 우리를 옭아매온 낡음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조(自嘲)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큰 자리를 잡고 있음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심리 위축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외부의 물리적 환경도 안보에서 경제에 이르기까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전례 없는 내우외환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이 국난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국민 입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하는 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올해에는 대통령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정치일정이지만 이번 대선은 과거와 전혀 다른 정치·사회환경에서 맞게 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치권에서는 현행 대통령제를 대통령중임제나 의원내각제 등으로 바꾸는 권력구조 개편, 즉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차기 국가 리더십의 구조와 방향과 선택지 등 모두가 새판 짜기에 돌입하는 셈이다.

올해 대선은 우리 사회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치 지형은 ‘스트롱맨 시대’로 통칭되는 자국이익 지향의 지도자들로 재편되고 있다. 차기 리더십은 이런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함과 더불어 갈수록 도발위협 수위를 높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탄핵 이후의 정치혼란과 국론분열을 수습하고 새로운 가치의 깃발을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정혼란 못지않게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이 대한민국이 처한 경제현실이다. 최대 복병은 역시 저성장의 고착화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당초 3%대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지금은 2% 중반도 힘겹다는 지적이 나오는 형국이다. 대통령 탄핵과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경제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부상 등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성장률은 더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가계부채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가계빚 총액이 1,300조원을 넘어선 것도 문제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전망돼 이자 부담이 덩달아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취약계층을 포함한 서민층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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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는 휴대폰·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산업이 급속히 경쟁력을 잃고 있는 가운데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극복하면서 수출시장의 활로를 개척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AI)이나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서 난마처럼 얽힌 규제의 늪에 빠진 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동·복지 등 사회 분야도 대선과 맞물려 태풍의 눈이나 다름없다. 노동개혁법 재추진 등 현안이 산적한 노동 부문은 특히 그렇다. 정치권과 노동계 모두 노사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은 여전히 노동계 편향적이고 보수신당도 좌클릭을 통해 노동권의 지지기반 확보에 애쓰는 모양새다. 정작 노동계는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며 임금피크제·성과연동제 등 기존 노동정책을 ‘재벌 청부’로 몰아붙이고 있다. 기업환경 악화가 불을 보듯 훤하다.

물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글로벌 경제환경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당장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3·4분기 성장률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연율 기준 3.5%나 된다. 일본 역시 지난해 실질성장률이 1.3%였고 올해는 1.5%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신흥국 경기도 최악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 부진에 허덕이던 수출 터널에도 한 줄기 빛이 보이고 있다.

우리 하기에 따라서는 사회 전체를 덮고 있는 염세주의를 떨쳐내고 오히려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지도층이 무게중심을 잡고 민관이 똘똘 뭉쳐나간다면 못할 것도 없다. 정부는 규제완화와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성장동력 발굴·지원에 힘을 쏟고 기업은 혁신과 도전을 통한 체질개선으로 호응해야 한다.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급변하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AI 시대에 맞춰 노동·복지·교육정책의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판도를 좌우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혁신의 리더십과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민관 모두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도전과 혁신의 정신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국가 시스템의 근본 개혁과 노사정 대타협을 반드시 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성사되면 한국 경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파탄을 전화위복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정치의 낙후성과 경제 양극화 심화는 기존 ‘1987년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개혁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이 불가피하다. 국민통합과 도약을 위해 사회 구성원의 인내심을 요구할 수 있는 진정한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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