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2일 ‘대선출마 선언’은 밋밋했다. 경쟁 후보처럼 대규모 ‘싱크탱크’를 발족시킨 것도 아니고,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아니다. 그저 페이스북에 ‘결심이 섰습니다!’는 글을 올렸을 뿐이다. 그러나 신선하고 임팩트는 강했다.
지난 2014년 7월 1일, 박 시장의 취임식도 비슷했다. 당시 시장 취임식은 내부 강당에서 거창하게 여는 것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박 시장의 선택은 달랐다. 취임식을 서울시청 정문 앞 야외에서 연 것이다. 취임사부터 사회자, 애국가 연주, 진행요원, 취임식장을 장식하는 소망나무까지 모두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고, 초청비, 대관료 등 별도비용이 들지 않다 보니 ‘비용 제로 취임식’이었다. 기존의 취임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면 밋밋하게 보이고 ‘쇼’로 보일 수 있지만, 박 시장은 ‘밋밋한 파격’을 택한 것이다.
그의 재선을 도운 선거캠프(희망캠프2)도 기존의 선거공식으로는 ‘파격’이었다. 기존의 정당 선거에서 흔히 보던 선대본부와 같은 조직이나 직함은 없었다. 대신 시민 누구나 참여하고 누구나 캠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것 하라 저것 하라’ 세세한 지시는 없어도 자원봉사자들은 스스로 선거운동원 역할을 척척 해 냈다. 스피커 빵빵 터지는 유세 차량을 없애는 대신 운동화 신고 배낭하나 메고 조용히 전통시장이나 아파트단지, 거리를 누빈 박 시장의 선거운동도 당시에는 꾀나 특이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도 신선한 파격이었다.
박 시장은 요동치는 지지율에 대해 그저 “뜬구름 같다”며 애써 태연해 왔다. 사석에서도 지지율 얘기만 나오면 고향 경남 창녕에서 어린 시절 소 풀을 뜯어 먹이던 기억을 회상하며, “들판에 누워 바라보던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뜬구름 같다”고 말해 왔다. 순간 순간 휙 휙 변하는 구름의 변화무쌍함이 지지율과 같은데 일희일비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박 시장의 지지율은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20%를 넘으며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여론조사전문업체 리얼미터의 2015년 6월 3주차 여론조사 집계 결과에 따르면 박 시장은 대선주자 지지도 22.5%를 기록해 김무성(20.1%)·문재인(15.6%)·안철수(7.6)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하는 등 정점에 올랐다. 이후 박 시장은 이렇다 할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고, 언론의 검증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시정 비전에 대한 공감대 확장을 이끌어내지 못해 지지율이 하락한 후 답보상태다.
리얼미터 2016년 12월 4주차 조사 결과 박 시장은 3.9%로 내려앉았다. 1년 반만에 지지율이 5분의 1토막 난 것이다.
5%대를 꾸준히 유지해 온 ‘콘크리트 고정 지지율’도 이번에 깨지고, 더 깊은 지지율 바닥이 있다는 게 확인됐다. 박 시장이 즐겨 말해 온 ‘뜬구름 같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다. 더구나 안희정 충남지사(4.2%)와 늘 앞서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4.1%) 보다도 뒤진 결과다.
이처럼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박 시장은 이날 공식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그것도 새해 첫 근무일, 자신이 시민들과 소통하는 창구인 SNS를 통해서다. 어딘가 밋밋해 보이지만, 박 시장은 자신의 강점인 SNS를 통해 대권 도전을 알린 것이다. 앞으로 박 시장의 선거캠페인 등이 SNS를 기반으로 집중 이뤄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 서울시에 따르면 박 시장의 SNS 팔로어는 페이스북 41만명, 트위터 182만명 등 240만명으로 국내 정치인 가운데 1위다.
겉으로는 ‘밋밋한’ 대선 출마선언으로 보이지만 안으로는 지지자 240만명에 한꺼번에 대권 레터를 보낸 것과 같은 것이다.
박 시장은 대선 출마선언에서 “대한민국이 거듭나려면 유능한 혁신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권변호사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켰으며 참여연대를 통해 정경유착 근절과 경제민주화를 추구했고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나눔문화를 세웠으며 희망제작소를 통해 자치와 분권의 모델을 만들었던” 박 시장 자신이 혁신가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대한민국을 거듭나게 하려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실제 박 시장은 자신을 혁신가나 소셜디자이너로 불러달라는 말을 종종 해 왔다.
박 시장은 “국민과 함께 늘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점에 평생을 혁신과 공공의 삶을 살아온 저는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시장 이 직접 “대권 도전”을 밝힌 것이다.
박 시장은 지금까지 시대적 소명을 강조했다. 지리산을 출발해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가 도중에 서울시장에 출마를 결심한 것도 시대적 소명을 이유로 댔다. 박 시장은 종주 당시를 회고하며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하고 나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날 선언에서도 박 시장은 “차기 대선은 고질적인 지역구도, 색깔논쟁, 진영대결이 아니라 새 시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경쟁이 되어야 한다”며 “말과 구호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왔는가, 혁신적인 삶을 살아왔는가, 어떤 성취를 보여주었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걸어온 길을 보면 그 사람이 걸어갈 길을 알 수 있다”는 그가 평소 즐겨 쓰던 말을 다시 인용했다.
박 시장은 최근 촛불정국에서 국가 개혁을 주제로 하는 거리 토론회 ‘국민권력시대’를 거의 매일 열고 있다. 광주와 순천 등 호남지역을 방문하면서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도 해 왔다. 지난주에는 시장직을 유지한 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시대적 소명을 언급하며 “결심이 섰다”며 구체적으로 대권선언을 하기는 처음이다.
박 시장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빠르게 정책화 해 왔다. 대표적으로 아동수당, 청년수당, 실업수당, 장애수당, 노인 기초연금 등 생애주기별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등이다. 특히 ‘위코노믹스(Weconomics)’로 대표되는 경제정책도 정밀하게 다듬는 중이다. 한국형 기본소득 외에 재벌개혁과 노동권 확보 등 다양한 불평등 극복 전략을 제시한 것인데, 박 시장은 “위코노믹스는 1%가 아닌 100%를 위한 경제이며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과 복지 네 바퀴가 동시에 굴러가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득주도성장론이나 포용적 성장론과 궤를 같이하지만 불평등의 핵심 원인인 재벌에 대한 강력한 개혁조치를 포함한 점이 다르다”며 차별성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위코노믹스의 첫 더불유(W)는 ‘원순노믹스’를 의미한다”는 애교섞인 말도 덧붙였다.
박 시장은 위코노믹스의 구체적 실행방안으로 “기업분할명령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중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 대한 집행유예나 대통령 특별사면 불허, 중소기업 집단교섭권 인정,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최저임금 1만원 실현” 등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나 재계가 기업활동 위축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는 것들이지만, 박 시장은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이 같은 정책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박 시장은 이날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누구보다 가장 잘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리고 “도탄에 빠진 절박한 국민들의 삶을 가장 잘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대한민국의 거대한 전환, 대혁신을 기필코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급등했던 지지율을 다시 회복하며 다가오는 대선 기간에 ‘박풍(朴風)’을 만들어 낼 지 주목된다.
<결심이 섰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6년은 분노와 절망의 시간이면서도 감격의 시간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촛불혁명을 통해 절망을 희망으로 분노를 감격으로 바꿨습니다.
탄핵안이 인용되는 2017년에는 국가의 혁신을 통한 대전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정치의 혁신, 경제의 혁신, 사회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워야 합니다.
새해는 IMF 외환위기로부터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사회는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국민의 삶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민주정부와 보수정부가 번갈아 집권했지만 누구도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불평등 경제체제와 함께 기득권은 더 강해졌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반드시 불평등 해소를 위한 경제의 혁신, 그리고 낡은 기득권 질서를 대체할 정치의 혁신이 이뤄져야 합니다. 국민이 진정한 국가의 주인이 되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서 2017년은 낡은 대한민국과 결별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첫해여야 합니다. 차기 대선은 고질적인 지역구도, 색깔논쟁, 진영대결이 아니라 새 시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경쟁이 되어야 합니다. 말과 구호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왔는가, 혁신적인 삶을 살아왔는가, 어떤 성취를 보여주었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걸어온 길을 보면 그 사람이 걸어갈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국민과 함께 늘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인권변호사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켰으며 참여연대를 통해 정경유착 근절과 경제민주화를 추구했고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나눔문화를 세웠으며 희망제작소를 통해 자치와 분권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시장 5년 동안 채무는 7조 이상 줄이는 대신 복지예산은 4조에서 8조로 두배 늘렸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토건중심 시대에서 인간존중, 노동존중 시대로 바꾸고자 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거듭나려면 ‘유능한 혁신가’가 필요합니다.
사회의 혁신, 국가의 혁신은 박원순의 삶이었고 꿈이었습니다. 항상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꿔왔습니다.
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점에 평생을 혁신과 공공의 삶을 살아온 저는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을 누구보다 가장 잘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도탄에 빠진 절박한 국민들의 삶을 가장 잘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전환, 대혁신을 기필코 이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