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각국이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서 통화정책이 한계에 부딪히자 재정 확대로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이 급속하게 이동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재정 확대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발표한 ‘2017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21조원가량의 재정을 보강하고 1·4분기 예산 집행률을 사상 최고 수준인 31%(중앙정부 기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지만 반복적인 ‘재정 당겨쓰기’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조차 1·4분기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재정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정부 돈 풀기 전성시대=각국이 적극적인 돈 풀기에 나선 것은 재정 확대를 제외하곤 경기를 살릴 수 있는 해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보폭이 빨라지면서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은 사실상 길이 막혔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 말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올해도 세 차례 인상할 가능성을 내비친 상태다. 전 세계에 달러를 무한 공급하는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다른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펼친다는 것은 외국인 자금 이탈과 통화가치(환율 상승)의 급격한 하락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다. 각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처럼 재정 확대라는 ‘어게인(again) 2009년’으로 돌아선 근본 배경이다.
실제 각국은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에 적극적이다. 오는 20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조달러(약 1,205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약속했다. 영국 정부는 인프라 투자와 주택 건설에 대한 재정 확대를 검토 중이며 2010년 재정위기 이후 긴축으로 돌아섰던 유럽 국가들도 재정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호주나 그리스·노르웨이·캐나다 등도 내년까지 공공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과 일본도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올해 재정을 확대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선다.
◇IMF도 돈 풀라는데…망설이는 한국=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각국의 재정 확대를 권고하고 있다. 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3%, 내년 3.6%로 전망하면서 적극적인 재정 확대가 없을 경우 성장률이 각각 0.4%포인트, 0.6%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을 정도다.
IMF나 OECD는 선진국 대비 양호한 부채비율을 들어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를 권고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문 부채비율은 42.7%로 미국(103.5%)이나 일본(232.8%), 프랑스(121.1%)는 물론 주요20개국(G20)의 93.4%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의 부채 증가율을 들어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 부양의 한계가 뚜렷한 ‘재정 당겨쓰기’에 국한된 거시정책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이유다. 21조원의 재정 보강은 공공기관투자(7조원), 보증과 대출인 정책금융(8조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6조3,000억원으로 줄어든다. 지방교부세·교육교부금 정산분 4월 조기지급(약 3조), 연간 재정집행률 1%포인트 제고(약 3조) 등은 재정 당겨쓰기로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1·4분기 추경 편성 여부에 대해서도 지표를 보고 판단하자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