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뒤 출범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상반기 중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경고가 국책연구기관들로부터 잇따라 제기됐다. 그동안 우리는 연간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등 조작국 지정 기준 세 가지 중 두 가지에만 해당돼 지정을 피했지만 미국이 ‘게임의 룰(지정 기준)’ 자체를 바꿔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다.
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국립외교원 산하 외교안보연구소는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대외경제 정책’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을 계속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에 포함시켜왔다”며 “상반기 중 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이 중국과의 극단적 대결을 피하는 동시에 압박을 하기 위해 한국·대만 등 작은 나라를 우선 지정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은 지난해 초 △대미 무역흑자가 크고 △상당한 경상흑자를 보이며 △외환시장에 한 방향으로만 개입하는 나라 등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나라를 환율조작국(심층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하는 법을 만들었다. 지정되면 미국과 양자협의를 해야 하며 1년 후에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해당국 기업의 미 정부 조달시장 참여 금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 압박 등 고강도 제재를 할 수 있게 했다.
이후 미 재무부는 일종의 ‘시행령’을 통해 지정 조건을 구체화했다. 연간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를 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가 3% 이상이며 외환시장 한 방향 개입 규모가 GDP 대비 2% 이상인 나라를 조작국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4월부터 반기마다(4·10월) 나오는 재무부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는 두 번 연속 환시 개입 규모가 기준을 밑돌아 조작국 전 단계 격인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됐다.
강선주 외교안보연구소 경제통상연구부 교수는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등의 기준은 법이 아니라 재무부가 정한 벤치마크이므로 재량권을 발휘해 조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티브 므누신 신임 재무장관 지명자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트럼프의 뜻을 이행하기 위해 게임의 룰을 바꿀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중국과 함께 우리도 조작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무역수지만 기준을 넘어선 중국보다 초과 항목이 많아 기준이 바뀌면 중국과 같이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