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재협상

조진구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연구교수

"'합의 정신'으로 돌아가 日 책임 따져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지 1년을 맞아 재협상하거나 무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28일 한일 양국은 외교충돌 국면을 봉합하는 조치로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고 일본이 책임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이 치유사업으로 10억엔도 지원했지만 일본의 계속되는 역사 왜곡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따른 정국장악력 약화로 합의 이후 이어져온 부정적인 국내 여론이 거세지는 양상이다. 무효·재협상 찬성 측은 일본의 진정한 책임과 반성이 없는 잘못된 합의가 양국 정부의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만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한국이 합의무효를 선언할 경우 우리의 국제 외교적 부담이 커지고 양국관계가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 무효화 선언땐 정치적 부담·관계 급랭 우려

● 日 사죄·반성 표명 등 철저한 약속 이행 촉구를

● 피해자 목소리 담지 못했다면 경위 검증도 필요



지난 2015년 12월28일 전격적으로 타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24년 만의 외교적 성과라고 자화자찬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정지 상태다. 조기 대통령 선거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들은 합의 파기와 재협상을 주장하고 당초 ‘잘된 합의’라고 추켜세웠던 새누리당 탈당파들까지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16년 12월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60%에 달했다. 시민단체들이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자 일본 외무성은 ‘합의 정신’에 반한다며 항의하고 철거를 요구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외교의 계속성이나 정부 간 합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도 위안부 합의가 정치적으로 타협된 만큼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 해도 지금 상황에서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지는 의문이다. 일본 정부가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하는 상황에서 합의 무효를 선언할 경우 한국 측의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커지고 양국관계는 급격하게 냉각될 것이다. 이런 파국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가 정치력을 발휘해 합의를 이행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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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는 우선 양국이 ‘합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위안부 합의의 골자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거출해 양국의 공동책임 아래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6년 7월 말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송금하고 합의 당시의 생존 피해자와 사망 피해자에게 각각 1억원과 2,00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 이외에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결정된 것이 없다. 일본 정부나 자민당 의원들 가운데 약속한 자금을 재단에 거출한 상황에서 일본 측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합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쿄 신문이 2016년 12월26일자 사설에서 “일본 정부가 앞으로 피해여성에게 위로와 사죄를 직접 전달하고 존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현대 정치외교에서 여론은 중요하다. 지금처럼 국내 정치와 외교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권자에 의해 직접 선출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정책을 집행하는 관료에게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과 정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여론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외교는 국내 정치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외교에서는 조약이나 협정처럼 문서화된 것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의 발언이나 구두합의도 무거운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2007년 3월 제1차 아베 내각 당시 야당 의원의 서면질의에 대해 아베 총리는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 역대 내각의 담화나 입장은 계승하겠지만 ‘군이나 관헌에 의한 소위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일본 측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2012년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아베는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 담화의 수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제2차 아베 내각의 출범 직전인 2011년 11월4일 미국 뉴저지주의 지방신문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의견광고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아베를 비롯해 38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포함돼 있었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세계 어디에나 있었던 공창이었다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국제적인 비난의 화살이 일본 측에 돌아갔다. 위안부가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요되거나 사기에 의한 것이라는 학문적 성과를 부정하는 광고는 일본 정부의 국제적인 위신을 오히려 저하시켰다. 결국 아베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포기하고 고노 담화만이 아니라 일본에 의한 전쟁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정부가 표명한 입장을 계승한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교협상에서 참가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일 외교당국에 의한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와 가족(유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면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그 경위를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는 국가 주도로 이뤄졌다. 반백년이 지난 지금 전쟁과 식민지배의 역사를 모르는 세대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보급으로 국가에 의한 집단 기억보다 개인들의 기억이 더 중요해졌다. 역사에 대한 기억이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되기도 하는데 한일관계에서 역사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처리돼야 하는지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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