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강 대 강’ 구도를 형성하고 자국 이익을 위해 ‘한국 때리기’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이 국제사회의 북핵 공조를 주도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을 우려했다. 북한이 올해 핵 능력 고도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북핵 문제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군사적 충돌 위기로 몰리는 ‘제3차 북핵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만큼 올해 북한 비핵화 문제는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트럼프 취임(1월20일) 전후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예정된 오는 2월에도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전략 강화’를 언급하는 등 미·러시아 간 핵 능력 경쟁이 예고되면서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일각에서 나오는 자체 핵무장론도 확산될 수 있어 한반도 내 핵 위험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행정부 초기 6개월 내 외교정책의 어젠다가 다 결정될 것”이라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및 한미 관계를 후순위로 밀지 않고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초기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4강 구도 속 한국 외교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북핵”이라면서 “올해를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핵과 관련해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며 ‘중국 역할론’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미중 간 힘겨루기로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대한 우리의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벼랑 끝으로 몰린 한국 외교의 방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장은 기존 정책을 유지하되 무엇보다 차기 지도자의 정책 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외교실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 정치 차원에서 대외 문제에 접근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국내의 정치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대외 문제를 국내 정치와 연계해 접근하는 전략은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이나 한일 위안부 합의 등 모든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적 어젠다로 접근하다 보니 해당국의 반발이나 보복조치 등 후폭풍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도 “모든 정치 이슈가 가치중심적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가진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진보나 보수 진영과 관계없이 객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정권교체 이후에도 외교적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외교정책과 달리 야당 등에서 성급히 다른 목소리를 내면 한국 외교가 오히려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진 소장은 “정권을 잡기 전에는 포퓰리즘적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야당이 정권을 잡아도 신중한 형태로 대응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정책을 바꾸려 한다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