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치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삼성그룹 수뇌부를 전격 소환했다. 삼성그룹 ‘윗선’에 대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특검이 이번주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러 조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 부회장이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는 데 청와대 등 윗선 ‘입김’이 작용했다는 ‘외압설’의 최고 정점에 있는 만큼 특검이 그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검은 9일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특검이 삼성그룹 수뇌부를 공개적으로 소환해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이날 오전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면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지 않고 조사실로 향했다. 최 부회장은 삼성그룹 내 ‘2인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장 사장도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특검은 이들 수뇌부를 상대로 삼성그룹이 최순실(61)씨 일가를 지원하게 된 경위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히 최 부회장과 장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로 바뀔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검이 이례적으로 피의자 전환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검이 이들을 긴급 체포한 데 이어 구속영장까지 청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이 두 사람의 말 맞추기 우려를 차단하고 곧바로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 위해 구속 수사라는 초강수를 띄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삼성은 승마협회와 함께 최씨 모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 ‘비덱스포츠’에 280만유로(약 35억원)를 제공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한 금액(204억원)도 삼성이 단연 1위다. 특검은 이 돈이 청와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하는 등의 대가성을 지닌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삼성 측은 제3자 뇌물죄 성립 요건인 부정한 청탁이 존재하지 않았고 대가성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증 등의 혐의다. 이들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깊이 개입했다고 알려진 인물로 특검은 지난달 말 참고인 신분으로 1차 조사를 한 데 이어 지난주 피의자 신분으로 바꿔 재소환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관련 의혹의 배후로 꼽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이번주 내 소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검은 또 이번 사태 ‘본체’인 최씨에 대해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기소한 혐의 외에 추가 혐의를 포착하고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딸 정유라(21)씨의 입시비리와 관련한 업무방해와 삼성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뇌물 혐의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이날 세 번째로 특검 소환 통보에 불응했다. 특검은 한 차례 더 소환을 통보한 뒤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해 최씨를 강제 소환할 방침이다.
/안현덕·진동영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