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욕이 없는 남녀, 다른 길에 있던 같은 동지가 우연히 만나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기로 한다. 바로 조창호 감독의 영화 ‘다른 길이 있다’의 이야기다. 겨울 한 복판의 쓸쓸함과 소복이 쌓인 눈의 포근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영화가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10일 오후 왕십리에서 열린 ‘다른 길이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조창호 감독은 “혼자 극복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인생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영화 관람이 여러분들이 겪은 최근 며칠 시간 중 괜찮은 시간이 되었음 한다”고 덧붙였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는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기로 한 두 사람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여정을 그린 이야기.
사는 게 지옥 같은 이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영화이다. 작품 속에선 ‘얼음’이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조창욱 감독은 어느 겨울 구리시민한강공원에서 경험한 얼음 위 위태로움을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 당시 뉴스를 통해 들려오던 동반자살 사건 역시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한 조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수 없이 스쳐가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없는 상황이 절망스러웠고 우울했다” 고 털어놨다.
영화의 기본줄거리를 두 남녀의 자살여행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차디찬 얼음 속에 수 많은 숨구멍이 숨겨져있듯,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해 쉽사리 재단을 하지 않는다. 영화의 미덕은 절망 뒤에서 조금씩 피어오르는 희망의 기운에 있다.
영화 속에서는 ‘얼음 숨소리’가 제 3의 배우로 활약한다. 조 감독은 “다 언 것 같지만 얼음이 물결과 작용하면서 얼음 숨소리를 낸다. 영화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실제로 촬영하면서 났던 소리이다”고 밝혔다.
불완전한 두 남녀의 또 다른 길과 삶, 그 시작에 힘을 보태는 장치 역시 얼음 숨소리이다. 감독은 “우연이나 운명이란 말로 두 사람의 여행이 해결되기엔 부족해서 ‘확률’이란 개념을 가지고 왔는데, 최소한 감독의 바람으로 두 주인공이 확률에 의해서라도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에 얼음 숨소리를 영화에 끌어들였다”고 설명했다.
김재욱, 서예지의 서늘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연기가 90분 내내 관객의 얼어붙은 마음을 천천히 해빙시킨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배우 김재욱이 슬프지만 아름다운 여정을 떠나는 남자 ‘수완’을 연기했다.
드라마 ‘야경꾼일지’, ‘무림학교’등과 영화 <사도>,<비밀>등에 출연하며 주목을 받은 서예지는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아픔을 간직한 여자 ‘정원’으로 분해 김재욱과 호흡을 맞춘다. 두 배우의 열연과 감독의 섬세함이 시너지를 발휘해, 영화의 톤 앤 매너를 매력적으로 그린다.
조창호 감독은 “천 개의 죽음이 있다면 천 개의 사연이 있는 건데, 제 3자가 ‘죽음을 단죄’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폭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며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 이것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고 믿는다.”라고 영화의 기획의도를 밝혔다.
18일 개봉을 앞둔 ‘더 킹’과 ‘공조’사이에 ‘다른 길이 있다’. 김재욱 배우는 “대작 영화들 사이에서 “‘다른 길이 있다’는 규모만 작을 뿐 절대 작은 영화가 아니다.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여부가 큰 영화를 결정짓는다”고 전했다.
<피터팬의 공식>, <폭풍전야> 등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조창호 감독의 신작 ‘다른 길이 있다’는 2017년 1월 19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