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6시부터 서울시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에 속속 나타난 삼성 사장들은 표정이 한결같이 굳어 있었다. 김종중 전략팀장(사장), 성열우 법무팀장(사장) 등 삼성 미래전략실의 주요 팀장이나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대표(사장)를 비롯한 계열사 사장들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도 침묵을 지켰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로 소환되고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구속 가능성마저 거론되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2일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삼성에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공식적으로는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솔직히 어떻게 대응하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답조차 찾기 힘들다는 게 삼성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룹 수뇌부가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망에 걸리면서 자칫 경영 공백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삼성은 미래전략실 법무팀이 중심이 돼 특검 수사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특히 뇌물죄가 성립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권력자들의 공갈과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금전적 지원이 이뤄진 것이라는 게 삼성의 확고한 입장이다.
삼성으로서는 이 부회장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한다.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4년 5월부터 입원한 상태에서 삼성을 실질적으로 지휘해온 이 부회장마저 처벌을 받는다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이 심각한 경영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올해 삼성은 갤럭시S8 흥행, 스마트카·인공지능(AI) 등 신사업의 육성 같은 중대 과제가 몰려 있어 사령탑의 존재가 더욱 절실하다.
최순실 사태로 임원 인사, 조직 개편까지 미뤄진 상황에서 그룹 수뇌부를 향한 특검의 수사는 일반 직원들까지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예년 같으면 조직 개편을 끝내고 신년 사업 전략을 본격적으로 실천해야 하지만 올해는 개점휴업과 다름없이 회사 전체가 멈춰선 느낌”이라며 “직원들은 삼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빨리 해소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