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에서부터 고속철도에 이르는 육상교통의 과학기술은 경제변혁의 추동력이었다.오는 17일 6개 국내 공공연구기관들이 손잡고 이르면 2026년 시험운행 개시를 잠정 목표로 한국형 하이퍼루프 공동개발을 본격화하는 것도 거대한 경제적 효과를 예감했기 때문이다. 현재 하이퍼루프 기술을 선도하는 곳은 스페이스X, 하이퍼루프원과 같은 미국 민간기업들이다. 우리나라도 향후 9년 내에 이들을 추월해 시험노선까지 만들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국내 기관들은 자신하고 있다.
하이퍼루프의 추진체계 기술의 주류가 바뀌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엘런 머스크가 하이퍼루프 개념을 공개 제안했을 당시만 해도 이 교통편의 작동 원리는 공기부양이었다. 튜브 모양의 저기압의 터널 속에 초고속으로 공기를 불어 그 힘으로 승객이나 화물을 태운 캡슐 형태의 차량을 최고 시속 1,220㎞까지 가속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공기마찰을 이겨야 하는 등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에 따라 대안으로 떠오르는 게 자기부상 방식이다. 자기부상기술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 기술과 경험을 갖고 있다. 기계연구원이 28년전부터 자기부상열차 기술을 개발해 정상급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얼마전 스페이스X, 하이퍼루프원 고위관계자 등을 만나고 돌아온 한 당국자는 “머스크를 추종했던 미국 업체들도 최근엔 공기부양 방식에서 선회해 우리나라처럼 자기부상 방식을 응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자기부상 방식 하이퍼루프는 일종의 전자석을 이용해 자기력을 일으켜 진공에 가까운 상태의 튜브 속에서 캡슐 차량을 떠다니게 하는 것이다. 오는 17일 6개 국내 연구기관들이 내놓을 한국형 하이퍼루프의 청사진은 0.1기압(대기압의 1,000분의 1)의 ‘아(亞)진공’상태에서 최고시속 1,000km이상으로 달리는 아음속 이동수단이다. 3~4초당 1㎞씩 달리는 셈이므로 만약 고속철도 오송역과 세종정부청사간 20여㎞길이의 시범노선이 개통된다면 불과 1분여만에 해당 구간을 주파할 수 있다.
한국형 하이퍼루프의 정식 명칭은 ‘캡슐트레인’인데 실제론 20~30명의 승객이나 짐을 싣는 한 칸 짜리 차량이므로 열차라기보단 극초고속의 자기부상 캡슐버스나 트럭에 가깝다. 노선마다 수십개씩 동시 운행하면 각 정거장에 약 2~3분마다 객차가 도착할 수 있다. 다만 음속에 버금가는 캡슐차량을 불과 몇 분 간격으로 운행하려면 현재의 고속철도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한 교통관제기술 및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철도기술연구원은 이를 위한 알고리즘 프로그램과 제어장치를 4년내에 개발해 가상운용장치(시뮬레이터)에서 시험해볼 예정이다.
문제는 저렴하면서도 효율적인 동력원 확보다. 백종대 건설기술연구원 박사는 “동력원으로 기존 일반 전력망을 이용하거나 태양광발전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머스크가 제안했던 초기 모델의 경우 30개 캡슐을 운용하는 1개 하이퍼루프 노선당 21메가와트(MW)가 소요되는 것으로 구상돼 있다. KTX열차 약 3개 분량의 에너지면 1개 노선 운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하이퍼루프의 건축공학적 특성은 고속철도보다 약 4분의 1이나 3분의 1이하 비용으로 노선건설이 가능하다는 추정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관섭 철도기술연구원 박사는 “캡슐트레인의 튜브 단면적은 30㎡여서 KTX 노선의 평균 통로 단면적인 110㎡보다 훨씬 작다”며 “그만큼 노선 건설시 터널공사 등의 비용이 적게 든다는 뜻인데 철도의 총건설비중 약 70% 토목비이므로 굉장한 건설단가 절감이 예상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