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이석준 "관객과 배우가 들숨날숨 나누는 무대...고되지만 짜릿한 호흡 포기 못하죠"

[인터뷰] 연극 '벙커 트릴로지' 열연 이석준

가로 7m·세로 4m 작은 무대에서

전쟁에 관한 3개 에피소드 연기

사방서 전해지는 객석 공기 덕에

매일 다른공연 무대 올리는 기분



배우에게 허락된 무대는 가로 7m, 세로 4m의 바닥이다. 전쟁터 참호를 형상화한, 관객 100여 명이 둘러싼 좁은 공간에서 격렬한 몸싸움과 팽팽한 감정 대립 등 모든 것을 소화해야 한다. 미세한 표정 변화와 숨소리까지, 배우는 물론 관객의 그것마저 날 것 그대로 포착되는 무대. 대학로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의도된 ‘제약투성이 공연장’은 독특한 경험에 열광하는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만석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의 이 장소에서 70분 내내 ‘클로즈업 상태’의 연기를 펼치는 것은 배우에게도 색다른 체험이다. “사방에서 전해지는 객석의 공기 덕에 매일 다른 공연을 올리는 기분”이라는 주연 배우 이석준(사진)을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몸에 멍 가실 날이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는 작품인 만큼 19평 남짓한 공간에서 주먹과 총질이 오가는 장면을 실감 나게 그러나 안전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연습기간 부상을 달고 살았다. 이석준은 “관객과의 거리가 이 정도로 가까울 줄은 몰랐다”며 “무기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보니 합을 맞춰 동선을 짜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고 설명했다.



벙커 트릴로지의 무대는 단순히 좁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대학로에 이 정도 크기의 극장은 많지만, 대부분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프로시니엄 형태”라며 “이 작품은 삼면을 객석이 둘러싸고 있어 배우가 관객을 연기의 공간 안에 넣고 공연을 진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들숨과 날숨을 서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공간보다 그를 긴장케 하는 것은 트릴로지, 즉 ‘3부작’이라는 형식이다. 벙커 트릴로지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각각 아더왕·아가멤논 신화와 고전 멕베스를 재해석한 세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4명의 배우가 1시간짜리 에피소드를 매일 두 편씩 무대에 올린다. “각각의 이야기가 모두 기승전결을 갖춘 완결된 형태인데다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인물과 감정을 표현해야 해 부담이 정말 컸어요. 한 공간에서 다른 이야기 3개를 동시에 해내는, 대한민국에서 이전엔 없었던 새롭고 고된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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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전에도 같은 설정의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에도 출연한 바 있다. 역시나 ‘호텔 객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3부작 형태다. “고되다”고 말하면서도 트릴로지 시리즈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이석준은 ‘짜릿한 호흡’에서 찾는다. 그는 “1회차 공연 관객의 상당수가 2회차 공연도 관람하는데, 2회차 공연을 위해 무대에 서면 객석의 공기도 확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며 “그만큼 우리 작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고 그걸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가 일일이 관객에게 다가가 플러그를 꽂아줄 생각은 하지 말라’던 가수 윤복희의 조언을 언급하며 “결국 관객은 ‘플러그를 쥐고 콘센트(작품)에 직접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셨다”며 “‘공연은 관객과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기본에 가까운, 가장 연극다운 연극을 만난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작품 메시지에 대한 자부심도 엿보였다. 벙커 트릴로지는 3개 에피소드를 통해 ‘전쟁’이라는 공포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이들의 우정·사랑·욕망·아픔 등을 펼쳐낸다. 이석준은 “진짜 전쟁을 겪은 사람은 많지 않을 테지만 오히려 리더십의 부재·외로움·공포 등 ‘전쟁 같은 세상’을 살며 마주하는 시대의 불합리함을 배우나 관객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관객의 현재에 건넬 화두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전했다. 2월 1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 사진=송은석기자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모르가나’ 에피소드 공연 장면. 1차 세계 대전 당시 좁은 군인 참호가 배경인만큼 포격 장면에서는 ‘천장에서 흙이 떨어지는 것 같은’ 생생한 장면 묘사가 이어진다./사진제공=STORY P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모르가나’ 에피소드 공연 장면. 1차 세계 대전 당시 좁은 군인 참호가 배경인만큼 포격 장면에서는 ‘천장에서 흙이 떨어지는 것 같은’ 생생한 장면 묘사가 이어진다./사진제공=STORY P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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