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4월 미국의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 회사인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수장인 댄 프라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직원 120명의 연봉을 최저 7만달러(약 8,400만원)로 올리면서 110만달러(약 13억1,500만원)였던 자신의 연봉을 직원들 수준으로 삭감하는 파격을 단행했다. 직원 연봉을 올리면 행복 수준이 높아져 결국 회사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이 회사의 결정은 세계적인 화제로 떠올랐지만 ‘곧 망할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시장경제원리에 역행해 지속성장이 어렵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2013년 1,310만달러 수준이었던 이 회사의 매출은 3년 새 128% 뛰었다. 지난해에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CEO에게 테슬라 전기차를 선물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CEO들의 리더십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임원과 직원의 거리를 줄이거나 없애고 기업 가치를 임직원은 물론 사회와 공유하는 CEO가 늘고 있다. 임직원에 대한 동기 부여, 사회공헌 확대가 회사의 지속성장을 이끄는 궁극적 리더십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최근 기자와 만난 대기업 계열사의 CEO는 신년 경영목표에 대해 “지금까지 해오던 익숙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제 한 기업의 수장인 CEO조차 DNA부터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룹 내에서 신성장사업을 맡고 있는 그는 “외국 기업이 하는 방식을 모방해 사업모델을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룹에서 투자 계획 승인을 받은 뒤 성과를 내면 되는 시대는 갔다”며 “그보다 조직원들의 일하는 문화와 생각을 바꾸고 여기에서 창의성을 이끌어내라는 게 요즘 CEO들에게 주어지는 숙제”라고 강조했다.
‘수익을 추구한다’는 대전제에는 변함이 없지만 수익을 어떤 방식(HOW)으로 달성해 이를 누구와 나누느냐(SHARE)를 두고 기존과 전혀 다른 리더십 문법이 필요해진 것이다. 김성희 김성희CEO리더십연구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CEO는 창의성과 통찰력을 갖춘 동시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는 리더십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험은 대기업 밖에서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1위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는 올해 초 임원제를 아예 폐지하는 강수를 뒀다. 이에 따라 신입 직원부터 임원(이사)까지 모두 직책을 떼고 ‘님’으로 호칭을 통일하게 된다. 등기임원을 제외한 미등기 임원은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위에서 군림하지 말고 현장에서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해 조직을 이끌라는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의 의도가 반영된 조치다. 네이버는 저(低) 연차 직원이더라도 뚜렷한 성과를 냈다면 임원들이나 꿈꿀 수 있었던 법인 차량 및 운전기사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방침이다.
글로벌 화장품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콜마는 ‘가정이 편해야 회사가 잘된다’는 철학으로 잘 알려졌다. 이른바 ‘유기농 경영’으로 알려진 윤동한 회장의 경영방식은 유기퇴비로 작물을 키우면 작물의 자생력이 커져 화학비료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신념에 따라 직원의 가정과 재교육을 중시한다.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어 흑자를 내기 시작한 우아한형제들의 작은 시도도 눈에 띈다. 우아한형제들은 2010년 ‘배달의 민족’을 론칭한 회사다. 우아한형제들은 퇴근 시간이 되면 상사에게 보고 없이 그냥 퇴근하고 휴가를 쓸 때도 휴가사유를 상사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회사는 망한다’ 등 회사 내부규율도 주목 받았다. 모두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고 수평적 업무협조를 통해 최대한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시도라는 것디 회사 측 설명이다.
여행박사는 자율책임제도 아래 주식을 직원 수대로 나눴다. 여행박사는 출퇴근 시간이 없고 사장 결재가 없다. 직원들은 1년마다 대표를 직접 뽑았다. 벤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직원이 나보다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직원의 장점을 빨리 파악해서 적합한 업무를 맡기고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것이 CEO의 역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