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K는 건설 폐기물을 고품질 골재로 가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다. IK를 만든 김상문 회장은 도전정신과 학습을 통해 기업을 일구고 있다. 김 회장은 자원재활용 사업을 일군 뒤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끈기와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 달에 한 번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접 인문학 강의도 진행한다. 그가 학습에 매진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인천시 검단산업단지 곳곳에는 회색빛 공장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다. 흙먼지 날리는 길에는 대형 덤프트럭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겨울철 특유의 흐리고 건조한 공기가 더해져 살풍경을 이뤘다. 작은 굴다리를 빠져 나오자 번듯한 건물이 나타났다. 그곳으로 덤프트럭들이 줄줄이 들어가고 있었다. 바로 IK 본사였다. 덤프트럭 꽁무니를 따라 IK 본사로 들어가자 바깥 풍경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넓은 잔디밭 위에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로 마감한 건물이 세련된 미술관처럼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깔끔한 하얀색으로 치장한 공장도 있었다. 덤프트럭들이 공장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IK는 건설 폐기물을 모은 뒤 이를 고품질 골재로 재가공해 판매하는 기업이다. 오염된 흙을 가지고 와 정화시킨 뒤 건강한 흙으로 다시 만드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IK는 인광산업(레미콘 생산), 인광아스콘(도로 포장용 아스콘 생산), 인광E&C(종합건설) 등 계열사도 거느리고 있다. 연결 기준 연간 매출액은 1,000억 원 수준이다.
환경을 살리는 기업 IK
IK 본사 건물 내부는 건축 폐기물 재생 사업을 하는 곳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예술적이었다. 그림과 글, 도자기 등 예술 작품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김상문 회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넓은 집무실 한쪽 벽면은 책으로 가득했다. 김상문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단 학자 같은 인상을 풍겼다. 범상치 않은 건물에 대해 물어보자 김 회장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윤경식 건축가가 설계했습니다. 2013년 세계건축가협회 특별상을 받은 건물이죠. 아, 2016년 10월에는 우리 공장이 인천시가 주관한 ‘인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인천시에 있는 수많은 공장 중 IK를 포함해 세 곳만 뽑혔죠.”
2013년 김상문 회장은 건설 폐기물을 골재로 만드는 작업 현장에 벽을 세우고 지붕을 씌워 공장을 만들었다. 본사 건물 옆에 있는 바로 그 공장이다. 김 회장은 말한다. “국내 골재 생산 업체 중 옥내 공장을 만든 건 IK가 최초였어요. 덤프트럭 200대가 한꺼번에 공장 안에 들어가 작업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독일과 일본 업체를 직접 둘러보고 그들의 장점만 모아 만든 겁니다.”
공장 크기는 가로 125미터, 세로 100미터, 높이 32미터로 바닥면적만 1만3,200㎡(4,000평)에 달한다. 골재 생산 공장 중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골재를 생산하기 위해선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 내부가 넓고 기둥이 없어야 한다. IK는 최소한의 기둥으로 축구장 2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공장을 짖기 위해 값비싼 고강도 H빔을 사용했다. 당연히 건축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2015년 한 해 동안 IK가 이 공장에서 처리한 건설 폐기물은 192만 300톤에 달한다. 15톤 트럭 12만8,200대분량이다. 김 회장은 말한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총량의 80%가 건설 폐기물입니다. 쓰레기 매립지로 갈 건설 폐기물을 IK가 재처리해서 골재를 만드는 겁니다. 쓰레기를 줄이고 부가가치도 올리는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죠.”
IK는 이 같은 점을 인정받아 2015년 환경부로부터 ‘대한민국 우수 환경산업체’ 로 지정되기도 했다. IK는 특허등록 15건을 보유할 정도로 기술개발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지질연구원, 산업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정부부처와 공동연구도 여러 건 진행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IK는 국내 최초로 지하 채석에 성공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말한다.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이곳(IK본사 자리)은 원래 돌산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돌산에서 돌을 캐내 골재로 팔았죠. 그런데 다른 골재 업체들은 산을 이루고 있는 윗부분에서 돌을 다 캐면 다른 곳으로 사업장을 옮기더군요. 하지만 돌은 땅 밑에도 있는 거 아닙니까. 땅을 파서 돌을 캐면 다른 산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법에 지하 채석에 대한 기준이 없어 제가 직접 관련 기관에 문의하고 법제처 등에 유권해석을 의뢰했죠. 그 과정에서 많은 힘이 들었지만 결국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IK가 국내 최초로 지하 70m까지 채석을 하게 된 거죠.” 더 이상 돌을 캘 수 없게 되면 파 내려간 공간을 메워야 한다. 보통은 흙으로 메우지만 IK는 건설 폐기물을 중간 처리해 생산한 재활용 골재를 활용했다. 김 회장은 그 자리에 번듯하게 IK본사 건물과 공장을 세웠다.
끈기와 학습으로 일군 IK
IK 본사 건물 곳곳에는 ‘114·학습’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거기에는 조금 긴 사연이 스며 있다. 1952년 생인 김상문 회장은 충청북도 보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 중학교를 댜녔다. 고등학교는 중퇴했다. 김 회장은 말한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어요.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고요. 그러다가 군대에 끌려가게 됐지요.” 그는 군대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땐 내 인생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밤에 보초를 서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나를 돌아보게 됐죠.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불쑥 들더군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도서 당번으로 자원해서 34개월 복무하는 동안 군대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왔어요. 1년에 책을 100~150권씩 읽었습니다. 그리고 인생 계획을 세웠어요. ‘40세까진 세상을 공부하고, 60세까진 사업을 하겠다. 60세 넘어서는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자’고요.”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 건 책이었다. 그는 제대 후 중졸 학력으로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그는 이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군대에서 수많은 교과서를 독파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잘 가르친다는 입소문이 나자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학원을 차렸다. 호사다마일까. 1980년 초 과외금지 조치로 학원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그는 조선일보에 입사해 광고와 판매영업 일을 했다. 그는 조선일보 인천 판매지사장으로 일하면서도 끊임없이 사업거리를 고민했다고 한다. 군 복무 때 세운 인생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때 그의 머리에 영감이 하나 떠올랐다. 아파트를 만들려면 콘크리트가 필요하고, 콘크리트를 만들려면 골재가 있어야 했다.
김 회장은 말한다. “여기(IK본사)가 원래 돌산이었다고 했잖아요. 당시 돌산 주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그 주인을 찾아가 외상으로 돌산 사용권을 달라고 했죠. 돈은 돌을 캐내 팔아서 갚는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만나주지도 않더군요.” 김 회장은 1주일에 두 번씩 1년 2개월 동안 끈질지게 돌산 주인을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돌산 주인이 김 회장에게 돌산 사용권을 외상으로 주겠다고 했다. 김 회장이 돌산 주인을 114번째 찾아간 날이었다. 김 회장 나이가 40세이던 1991년의 일이었다. 그는 곧바로 사업에 착수했다. 김 회장 집무실 책장에는 당시 돌산 주인의 사진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액자를 가리키며)저기 저분입니다. 114번 찾아간 정성을 가상히 여겨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 은인이시죠.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콘크리트 업체에서 골재를 달라고 선수금 들고 찾아올 정도로 잘됐습니다. 17억 원이었던 돌산 사용료를 6개월만에 갚았어요. 그 후에 제가 아예 돌산을 매입했습니다.”
김 회장은 사업을 위해 돌산 주인을 114번을 찾아간 ‘끈기와 정성’, 책을 읽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학습’을 IK의 기업정신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114·학습’이란 말이 나왔다. 김 회장은 말한다. “114는 될 때까지 하는 도전정신을 의미합니다. 저희 회사 전화와 팩스, 차량 번호 끝자리는 모두 숫자 114로 끝나죠. 저는 직원들 휴대전화 번호 끝자리도 114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직원들 명함을 보시면 알 겁니다. 그리고 학습에는 숨쉬는 것처럼 책을 읽고 본받을 만한 점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뜻이 담겨있어요.”
공부하는 경영자 김상문 회장
김 회장은 IK의 자랑거리로 학습문화를 꼽았다. 그는 학습의 기본 재료로 책을 언급했다. 그의 생각은 독서재단으로 이어졌다. 김 회장은 말한다. “대한민국에 독서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재단을 만들려고 해요. 좋은 책이 나오면 구입해서 도서관에 기부하고, 출판 비용도 보조할 겁니다. 책 읽는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 일도 할거고요. 이미 재단 설립 관련 서류는 접수해놓은 상태에요. 재단에 제가 가진 주식과 부동산이 들어가게 되는데 세무 문제만 해결되면 올해 안에 출범시킬 겁니다. 재단 이름을 ‘책 읽기를 숨쉬기처럼 재단’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제대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IK본사 지하에는 ‘114홀’이 있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내 학습이 이뤄진다. IK는 개인과 회사의 지속성장을 위해 학습 조직을 만들어 매월 학습 미팅을 갖고 있다. IK 직원들은 무조건 1년에 책 60권을 읽어야 한다. 김 회장은 말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섞어 읽으라고 하고 있어요. 그건 지시 사항이죠. 직원들에게 해마다 자신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록하고 책 내용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공책에 쓰라고 합니다. 그렇게 모인 공책을 나중에 자식들에게 주라고 했어요. 오늘의 저를 만든 건 학습의 힘이니까요. 저는 한 달에 두 번 가족들과 서점에 가라고 직원들에게 권하고 있어요. 직원들이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니면 학비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접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요즘은 논어를 강의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회장은 논어와 한시 학습을 위해 전 직원들에게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 이상 실력을 갖추라고 독려하고 있다. 과장 이상 승진을 하기 위해선 무조건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을 따야 할 정도다. 김 회장은 말한다. “한자를 알면 책을 빨리 읽을 수 있어요. 이해도를 높일 수 있죠. 무엇보다 중국 시대를 맞아 기본적인 한자는 알아야 합니다.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김 회장 자신은 한자능력검정시험 ‘특급’을 취득했다. 특급을 받은 사람은 국내에 1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김 회장은 말한다. “5,978자를 알아야 해요. 저도 두 번 떨어진 뒤 새벽 2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출퇴근도 지하철로 하면서 공부했습니다. 심지어 목욕탕에서도 한자를 외웠죠. 사람은 한 번 까무러칠 정도로 뭔가 해봐야 발전할 수 있어요.”
그는 스스로 학습하는 사람이다. 2010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해 2014년 졸업했다. 내친김에 곧바로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그는 2014년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해 20대 일반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27학점을 이수한 그의 학점은 4.5점 만점에 4.06이었다. 지각이나 결석 없이 공부에 매진한 결과였다. 김 회장이 경영학이 아닌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이유가 궁금했다. “어릴 때 삼국지를 보면서 중국 문학과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게다가 우리에게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잖아요. 앞으론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사업을 하든 뭘 하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4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IK는 8년 만에 사업을 완전히 접어야 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김 회장은 말한다. “의욕만 앞섰던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장 큰 실패 이유는 중국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었어요. 대기업이 아닌 이상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오너가 직접 중국에 주재해야 합니다. 중국어도 완벽히 해야 하고요. 당시 저는 중국어를 못해 통역으로 의사를 전달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의사소통이 안되는 거였습니다. 중국인과 속 깊은 말도 할 수 있고, 중국 시도 함께 읊고, 그들의 철학과 내면을 어느 정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틈나는 대로 강연에 나서고 있다. CEO 조찬 모임 등에서 김 회장의 지식과 말솜씨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김 회장은 말한다. “이제는 먼저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제 강연이 재미있거든요. 의미 있는 모임이다 싶으면 시간 나는 대로 나가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 3월 김 회장은 한국능률협회(KMA)가 개최한 ‘KMA 최고경영자조찬회’에서 ‘오늘의 중국이 설계된 길’이란 주제로 특강을 했다. 800여 명의 CEO들이 김 회장이 풀어내는 100분간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2016년에는 교보생명과 고려대학교에서도 중국 근현대사를 강의했다. 그는 책을 쓰는데도 열정적이다. 2015년 그는 펜클럽 회원이 됐다. 그는 지금까지 ‘책 속에 길이 있다(1~6권 출간)’, ‘소평소도(덩샤오핑 평전)’, ‘UN도 감동한 위대한 지도자 저우언라이’를 썼다. 얼마 전에는 ‘CEO 김상문이 풀어 쓴 중국 명시명사 120’도 펴냈다. 지금은 마오쩌둥 평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 회장은 말한다. “제가 낸 책들이 제법 팔렸어요. 사실 유명인들 중엔 대필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직접 씁니다. 평전을 쓰려면 자료를 엄청나게 모아 나름대로 소화를 해야 하는데, 저는 주로 중국 자료를 보니까 시간이 더 걸리고 있습니다.”
100년 기업으로 가는 길
김 회장은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세 가지 능력을 꼽았다. 의사결정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학습 능력이다. 김 회장은 말한다. “세상의 흐름이 바뀌면 잘 되던 업종도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요즘엔 경기 변동도 심하고 돌발 변수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리더가 끊임없이 학습하면 새로운 기회도 보이고 의사결정 능력도 향상되고 문제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어요. 학습 능력이 없으면 통찰력 있게 세상을 살필 수 없죠. 과거의 성공 습관에 젖어 감에만 의지하면 그게 몇 번이나 성공할 수 있을까요.”
김 회장은 IK를 창업한 후 적자를 보거나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할 때도 실패 시 회사에 어려움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진행했다. 회사 신용도도 AA를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도 IK 어음은 유통됐을 정도다.
김 회장은 IK의 상장도 계획하고 있다. 김 회장은 말한다. “증권사에서 액면가 70배 정도를 생각하던데, 저는 액면가 100배를 달라고 했어요. 직원들한테도 주식을 나눠줬으니까,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사 10년 차 직원들은 모두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고 배당도 받고 있습니다.”
그는 피터 드러커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가 쓴 책 24권을 모두 읽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그의 가르침 중 ‘돈 벌려고 사업하지 마라. 사업을 똑바로만 하면 돈은 따라온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경영의 목적이 이익 창출이 아닌, 사회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다른 이의 성공을 도와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제 묘비명에 ‘다른 이의 삶에 변화를 준 사람’이라고 써달라고 부탁해 놓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겁니다. 하하하.”
IK본사 건물은 ‘백년사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이 되자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김 회장은 말한다. “저는 IK가 100년 가는 기업이 되길 희망합니다. 그렇게 성장하기 위해선 조직 구성원들이 늘 고민을 해야 하죠. 그리고 고민의 힘은 독서와 학습에서 나옵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꿈을 펼칠 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뛰어난 리더가 혼자 끌고 가는 조직이 가장 위험합니다. 시스템이나 문화가 회사를 끌고 가게 만들어야 해요. 제 역할은 회사에 시스템이 구동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막혀 있으면 뚫어주는 것, 그리고 ‘114·학습문화’가 사그라지지 않도록 계속 불을 지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