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작품을 선택하기까지 신중하게 고민하지만 결정이 되고 나면 추진력이 빠르다고 한다. 그리고 촬영이 끝날 때까진 이 악물고 달려드는 배우 현빈의 ‘공조’는 리얼하고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촬영 수개월 전부터 북한말 수업은 물론 생애 첫 액션 연기를 위해 고강도 트레이닝을 거친 현빈은 카체이싱, 와이어, 격투, 총격씬 등 장르를 뛰어넘는 액션을 모두 소화했다. 고가도로, 이태원 한복판, 울산대교, 화력발전소 등 탁 트인 공간과 위험한 장애 요소들이 가득한 공간적 특성을 절묘하게 활용한 액션 시퀀스들은 온몸을 던진 현빈의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현빈 액션의 진수를 보였다’는 평도 이어지며 화려한 액션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현빈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신경을 썼다.
영화 속에서 북한 특수 정예부대 출신인 철령은 말보단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인물이다. 또한 동료를 잃은 아픔을 간직한 채 집요하게 범죄 조직을 쫓는 철령의 묵직한 감정을 담아내야 한다. 특히 72시간 동안 남한형사 진태(유해진 분)랑 함께 임무수행을 하는데 인간적으로 유대를 느끼고 소통하는 걸 제대로 표현해내야 한다.
현빈은 “서로 시스템적인 걸 배제시키고,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철령이란 인물의 대사가 많은 분량이 아니라 눈빛이나 행동, 몸의 움직임 속에 많은 게 담겨있어요. 짧은 단답형 대사 안에서 소통과 표현을 하는 게 힘들었어요. 톤과 뉘앙스 등 상대방의 대사를 듣는 눈빛, 그런 사소한 것들이 철령에게 크게 작용 했어요. 무심히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철령이에게는 가장 큰 것이 될 수 있어요. 그걸 잡아내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았어요. 액션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니까요. 디테일한 것들이 분명히 전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18일 개봉을 앞둔 김성훈 감독의 ‘공조’는 남북 최초의 비공식 합동수사라는 신선한 설정과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유쾌한 재미, 현빈과 유해진의 색다른 케미스트리로 기대를 높이는 영화다. 현빈은 현란한 액션을, 유해진은 치명적인 재미를 담당하며 관객을 제 편으로 끌어당긴다.
‘공조’는 현빈의 전작들인 ‘역린’, ‘만추’ ,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등에 비해 확실히 상업적 성향이 짙은 영화다. 배우는 “하고 싶은 것을 정해 놓지는 않아요.”라며 선을 그었다. 단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배우의 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0대에는 영화의 메시지를 보고 작품을 선택했지만, 30대 때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액션물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은 ‘공조’와 ‘꾼’같은 작품들이 연달아 눈에 들어온 거죠. 같은 것을 두 번 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액션을 다시 할 수 있겠지만 ‘공조’와는 또 다른 액션을 찾고 싶어요. ”
“‘내 이름은 김삼순’ 때 배경이 재벌 2세이고 ‘시크릿 가든’ 역시 배경이 재벌 2세이니 같다고 보시는 분도 있는데, 그 안에 캐릭터는 모든 게 다르다고 봤기 때문에 선택을 했어요. 작은 폭이든, 큰 폭이든 제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게 작품 선택의 기준이라면 기준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배우는 선택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배우가 한다. 그도 작품 선택을 할 때마다 고민을 많이 한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품과 그가 선택하는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늘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과 대중들이 바라는 것에는 종종 충돌지점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할까, 보시는 분들이 바라는 것을 해야 할까요? 둘 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그 기준으로 선택하진 않아요.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늘 해오면서,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 여러분에게 선택의 기회를 드리고, 그 결과는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인거죠.”
이날 인터뷰 현장에선, 제작비 120억원을 들였지만 4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는 아쉬움을 남긴 영화 ‘역린’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린’에 이은 ‘공조’의 흥행 부담감도 당연히 있을 터.
이에 현빈은 “흥행에 대한 기준점을 모르겠다. ‘역린’은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인데...얼마가 들면 흥행인가요?”라고 되물었다.
“물론 기대치에는 못 미쳤을 수 있고, 그럴 수 있다고 봐요. 배우 개인적으로 제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역린’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세월호 참사 사건)시국적으로 좋지 않았고, 많은 분들이 접근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 때가 아니었으면 좀 더 많은 분들이 보셨을 수 있고, 혹은 더 많은 분들이 보시고 안 좋은 평이 많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책임을 회피한다는 게 아니라, 흥행에 대한 부분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제 능력 밖인 것 같아요. 카메라에서 벗어날 때까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 없어요. 이 부분은 한결같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신인 때나 지금이나요. 오히려 지금 더 열심히 한다고 말 할 수 있어요. ”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다”고 말하는 배우. “오래 준비했고 부끄럽지 않게 노력했다”고 말하는 배우. 누군가는 ‘완벽주의자’ 현빈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이들어가는 배우의 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보시는 분들이 최고가 아니라고 할 순 있어도, 전 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촬영장 뒤에서 고생하는 스태프 및 작품에 투자하는 분들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더 절 다잡게 해요. 사실 배우들만 앞에 나와서 작품을 이야기하고 성과를 보여주게 되는 게 현실인데, 그렇기에 더욱 책임감을 느껴요. 다들 노력하고 있는데 보이는 직업을 가진 제가 책임을 안 진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성실히 임해야 카메라를 벗어났을 때 더 당당할 수 있는 거죠. 그 뒤에 연기와 작품에 대한 판단은 보는 분들의 몫이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움직이는 데 솔직한 마음처럼 강력한 무기가 없다’는 클래식한 주제를 다시 한 번 관객 분들에게 전하고 싶었다는 김성훈 감독의 말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현빈이 보여준 배우의 자세였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반듯한 성실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