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각종 구설에 휘말리면서 대선주자로서의 기대감이 한풀 꺾인 모양새다. 잇따른 실수에 연대를 고심하던 국민의당과 비문계도 등을 돌렸다. 일각에서는 ‘제2의 고건’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하지만 잠룡 가운데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만큼 기대를 버리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따라 설 연휴를 앞두고 열릴 관훈토론(오는 25일)이 반 전 총장의 평가에 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턱받이·생수 논란’ 등 가는 곳마다 실수를 연발하는 반 전 총장은 19일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날 대전 KAIST에서 특강을 마친 뒤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를 묻는 기자들에게 “내가 어제 길게 답변했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느냐)”며 손가락질을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앞서 지난 18일에는 위안부 문제를 묻는 기자들을 ‘나쁜 X들’이라고 표현하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정치인답지 않은 행동에 우려와 함께 비판이 쏟아졌다. 한때 러브콜을 보내던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현재 (연일 구설에 오르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대선 완주가)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고 말했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제2의 고건이 될 것”이라며 중도사퇴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는 “고 전 총리는 정치권 밖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다가 준비 과정에서 지지율 하락으로 중도포기했다”며 “굉장히 무게감 있는 후보로 입국했는데 날이 갈수록 지지율이 내려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 전 총장은 최근 ‘금전적인 부분부터 빡빡해 종국적으로는 어떤 정당이든 함께해야겠다’고 말해 정치권으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귀국 1주일 만에 지지율이 떨어지자 정치 행보에 더욱 속도를 높이며 세 불리기에 나섰다. 기성 정치인과 다른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설 연휴 전까지 정치인들과 만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러한 구상이 흔들리자 전략을 바꾼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반 전 총장에게 “(유엔 사무총장) 경험을 살려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일해달라”고 당부, 간접적으로 반 전 총장을 지지했다. 반 전 총장은 이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인 손명순 여사를 찾았다. 20일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차례로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