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가 아니다. ‘우리가 옳았다’고 우쭐해서도 안 된다.
국민과 소비자들은 삼성그룹에 더 많은 숙제를 안겨줬다.
19일 법원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부회장과 삼성으로서는 구속이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앞으로 특검 수사, 법원 재판 등 장기간에 걸친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지금까지의 사실만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의 명성과 위상에는 금이 갔다. 지난 1938년 삼성상회로 출발해 79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에도 시퍼런 멍이 들었다.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번 시련과 아픔을 계기로 고래 심줄처럼 질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기반을 둔 ‘투명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재계 원로들은 “삼성그룹이 ‘삼성에 좋으면 대한민국에도 좋다’는 자만과 허상을 갖고 있다면 하루속히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재벌과 정치권력은 서로를 이용하려는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삼성은 말로만 정도(正道)경영을 외쳐서는 안 되며 단호한 실행 의지를 갖고 국민들에게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반열에 오른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구태를 버리고 정경유착을 다 끊겠다”고 말했다. 국민들과의 약속을 담은 처절한 ‘반성문’이었다.
실제로 국민들은 ‘품질의 삼성’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만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삼성의 기업문화에는 우려와 걱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공유경제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는 투명성과 개방성이 중요한 기업 덕목이 될 것”이라며 “삼성을 포함해 한국 대기업들은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이 부패기업이라는 주홍글씨의 굴레를 덮어쓴다면 이는 한국 경제 전체를 욕보이는 행위가 된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2016년 기준 518억달러(약 58조원)로 글로벌 브랜드 랭킹에서 당당히 7위에 올라 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300조원으로 코스피에서 22%를 차지한다. 삼성이라는 타이틀 아래 일하는 임직원 수는 전 세계 50만명에 달한다. 협력업체를 더하면 수백만명이 삼성의 이름 아래 오늘을 살아간다.
삼성이 고강도의 투명문화 수립, 정도경영에 나서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의 최종 결과와 무관하게 삼성은 정치권력과 단절하면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정치권력이 기업을 악용해서도 안 되지만 기업도 정치권력에 기생하려는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