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를 자극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글쎄요. 없어요. 숨만 쉬어요. 정말 숨만 쉬어요.”라고 답했다. 겨우 숨이 붙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의 숨소리 하나 하나를 느끼며 진짜 살아있음을 느껴보자고 마음 먹었다는 의미다.
“저의 새해 화두는 ‘나를 잘 챙기자’입니다. 보통 자기 자신을 잘 못 챙기거든요. 그렇게 나를 잘 챙겨서 건강해져야죠. ‘내가 나를 참 많이 알아줘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차)태연이 형한테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그럴까. ‘더 킹’에서 조인성이 명장면으로 뽑은 장면은 태수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난 뒤 친구 및 친척들이 헹가래를 해주자 세상 누구보다 활짝 웃는 장면이었다. 이 표정은 조인성도 처음 본 얼굴이었다고 고백했다.
“저의 가장 예쁜시절을 뒤늦게 보는 듯 했어요. 저에게 저런 모습이 있는지 저도 그 때 알았어요. 자신이 ‘활짝 웃는 순간’에 대해 기억을 해보세요. 남들이 모르게 내 만족감에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생에 한번은 있지 않을까요?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우리가 심각하게 살고 있는데, 그게 아마 자기가 자기 모습을 못 본 채 살다보니 심각해진거죠. 개인적인 욕심, 야망, 욕망, 그리고 책임감 등으로 인해 때가 묻지 않았나? ”
조인성은 그렇게 한층 여유가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의 대답 속도는 인터뷰에 대한 떨림(?)으로 여타의 배우들보다는 초고속으로 빨랐으나,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영화 ‘더 킹’ 속에서 조인성은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박태수의 일대기는 관객들에게 권력의 달콤함과 동시에 권력의 이면을 보여주며 강렬한 한방을 남긴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권력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는 영화 ‘더 킹’은 개봉 첫 날 무려 288,961명을 동원하며 역대 1월 한국영화개봉작 최고 오프닝의 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여기에 개봉 당일 사전 예매량은 무려 120,000장을 육박하며 2017년 최고 예매 기록을 세우며 흥행 신드롬을 낳고 있다.
9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조인성은 “‘더 킹’은 공감과 제시를 같이 가져가는 영화”이자 “우리 앞의 미래에 질문을 던져보는 영화이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 권력층에 대한 날 선 풍자와 비판이 가득한 이번 영화를 두고 현 시국이 겹쳐진다는 평도 이어졌다. 이에 조인성은 “누군가를 묘사하려고 만든 건 아니다. 억울함이나 분노가 올라왔다면, 그런 감정이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공감을 안길 것이다. 제시라면...최악이 아닌 차악이라도 선택해서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조금 나은 세상을 위한 원동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의 대답은 영리했고 거침없었다. “이 영화 출연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겠다구요?기자분들이(공정한 언론이) 가만 있을까요, 안 그래요? 음. 영화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세상이 된 것 같아요. 내 권리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먼저 돌아봐야죠.”
한 남자를 통해 30년이라는 방대한 히스토리를 담아낸 ‘더 킹’은 80년대 전두환 정권부터 2010년대 이명박 정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싶었던 한 남자의 욕망을 따라간다. 권력의 맛을 알게 된 샐러리맨 검사, 대한민국 권력의 추를 쥔 전략부 검사까지 태수의 관점을 내레이션을 통해 보여준다.
조인성은 권력의 맛을 알게 된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한민국의 권력을 설계하고 기획하며 세상 위에 군림하는 인물이 되기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아우르며 섬세하고 다양한 감정선을 담아냈다. 그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유는 억지스런 설정 없이 박태수의 30년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
조인성은 캐릭터의 변화 자체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태수가 겪게 되는 사건,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 주목하며 연기했다.
“처음에는 시대별로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반대로 포인트가 없어도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전 제 소꿉친구들을 보면 계속 봐서 그런지 걔들이 늙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잖아요.”
“현직 대통령 사진이 계속 바뀌면서 시대가 언제인지를 알려줘요. 저로서는 따로 표현하지 않아도 연출적으로 커버해주니까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됐죠. 계속 봐왔던 인물이라 나뉘지 않아도 상황이 달라진 것에 대해 물 흐르듯 나갈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만남과 헤어짐에 따라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구성될 거로 생각했죠.”
반대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한 구석에 내 던져진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전략 3부의 핵심인물이자 권력 앞에서 순종적인 검사 양동철이 박태수의 뒤통수를 치는 장면이다. 검찰청 안 외진 곳에서 혼자 툭하니 떨어져 혼자 있었을 때의 장면에 대해 그는 “배성우 형이 대사 톤이나 연기적으로 너무 잘 해줬던 장면인데, 정말 사회 속에 ‘툭’ 하니 혼자 있을 때 기분이 떠올라 공감이 됐다”고 했다.
영화가 공개된 후 가장 뜨거운 반응은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의 칼군무 춤사위였다. 대한민국의 추를 움직이는 권력자들이 클론의 ‘난’을 부르는 장면이 공개되자마자 뜨거운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권력의 중심에 올라선 3명의 남자가 “클론의 ‘난’,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 속 풍자에 더없이 잘 어울렸다. 조인성은 ”현장 스태프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며 만족스러워했다.
‘더 킹’이 빛나는 이유는 조인성 외에도 대한민국의 권력을 설계하고 기획하는 차세대 검사장 후보 한강식 역의 정우성, 권력 앞에 순종적인 전략부의 행동대장 양동철 역의 배성우, 태수 대신 궂은일을 해결해주며 태수를 돕는 들개파 2인자 최두일 역의 류준열의 환상적인 연기 조합에 있다.
조인성은 “만약 영화 속에서 태수가 잘 보였다면 우성이 형과 성우형에게 공을 돌릴 수 있다” 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준열이랑 전 후배니까 선배들이 해주는 것을 따라가기만 했다”고 말 한 것.
그가 정우성과 배성우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연장자에 대한 존경심 그 이상이었다. “우성이 형은 저의 동경의 대상이자 최고의 배우였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 너무 어려웠고 친해질 수 없었는데, 이번 ‘더 킹’을 통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됐어요. 우성이 형이 얼마나 다정한대요?(웃음)
성우형은 (차)태연이 형 때문에 알게 된 선배인데 되게 따뜻한 사람이에요. 그게 그 배우의 장점일 것 같아요. 남을 해치지 않아요. 생긴 것에 비해서(하하). 자신은 극악스런 캐릭터를 많아 맡아서 모르는 분들에게 오해를 받는다고 하는데 알고 보면 되게 착해요. 그래서 태연이 형이 저에게 소개시켜줬겠죠.“
조인성의 언어구사력은 정감이 있었다. 그가 뿜어내는 공기와 숨소리는 10대의 천진함부터 30대의 진중함까지 모두가 섞여있었다. 동서남북 어딘가에서 예기치 못하고 불어오는 유머와 위트의 바람도 싱그러웠다. 그래서 더 리얼하게 다가오는 인터뷰 현장이었다.
마지막 멘트 역시 그의 성격을 잘 보여줬다. “‘더 킹’ 한번 봐주세요. 봐주시고 이 영화가 어땠는지에 대한 평가를 해주세요. ‘좋으니까 봐주세요’란 말은 좀 그렇잖아요. 평가는 보는 사람의 몫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