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美 트럼프시대] "살육...황폐...고갈"...희망 대신 고립·분열 조장한 트럼프

■ 역사 되돌린 취임사

엘리트 기득권층·외국산업, 美비극 초래 약탈자로 지목

국민 불안·분노·적개심 자극...강력한 국수주의적 메시지

WP "세계역사 70년전으로" FT "악의 가득찬 뒷걸음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중앙정보국(CIA) 본부를 뒤로 하고 걸어나오고 있다./랭글리=EPA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중앙정보국(CIA) 본부를 뒤로 하고 걸어나오고 있다./랭글리=EPA연합뉴스




“미국의 살육(American carnage)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끝난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미국 산업을 희생시켜가며 외국의 산업을 부유하게 만들어왔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사이 미국의 부와 힘과 자신감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미국은 다시 승리하기 시작할 것이고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승리를 누릴 것이다.”


20일(현지시간) 취임선서를 마친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이 비를 맞으며 토해낸 16분간의 취임사는 국수주의적 선동과 고립주의의 강렬한 메시지로 꽉 찬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연설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인 말을 동원해 미국 사회를 범죄와 빈곤, 무너진 교육 시스템과 녹슨 공장들로 가득 찬 ‘살육’의 현장으로 묘사하고 이러한 미 국민들의 비극을 초래한 약탈자로 워싱턴DC의 소수 엘리트 기득권층과 외국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오로지 미국을 우선시(Only America First)’하는 애국심을 발휘함으로써 미국을 더 강하고, 부유하고, 자랑스럽고, 안전한 국가로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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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선 기간 내내 ‘미국’과 ‘외국’, ‘기득권층’과 ‘국민’이라는 대결 구도를 부각시켜 온 트럼프식 분열정치의 수사를 극대화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의 희생으로 외국이, 국민들의 희생으로 일부 엘리트 계층이 배를 채워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앞으로는 오로지 미국과 국민의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자신의 국정운영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CNBC는 이날 취임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미국의’ 또는 ‘미국인’이라는 뜻의 ‘아메리칸(American)’이었다며 연설 동안 무려 16차례나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 노골적으로 표명된 미국 우선주의를 일각에서는 19세기 미국 포퓰리즘 정치의 선구자인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비유하고 있다.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포퓰리스트적이고 일종의 국가주의적 운동의 기본원칙을 날 것 그대로 선언한 것”이라면서 “트럼프의 연설은 잭슨 스타일과 많이 닮았다. 거기에는 애국주의라는 깊은 뿌리가 있다”고 말했다.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연설을 하고 있다./워싱턴DC=AFP연합뉴스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연설을 하고 있다./워싱턴DC=AFP연합뉴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표방한 ‘미국 우선주의’는 모든 미국인을 끌어안기보다는 자신의 지지층인 특정 계층, 즉 저소득 백인 남성들만을 의식함으로써 미국을 외국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은 물론 미국 사회 내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대통령 취임선서는 모든 미국민에게 바치는 충성 맹세”라면서 미국인의 단합과 통합을 강조했지만 뉴욕타임스(NYT)는 “그의 연설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백인들에 집중하는 데서 나아가지 못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가 “사나운 국가주의적 선언”이었다면서 그가 앞세우는 ‘미국 우선주의’가 1930년대 당시 나치 독일에 우호적이던 세력들의 좌우명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2차대전 발발을 계기로 고립주의 정책을 포기한 미국사회와 세계 질서가 트럼프라는 포퓰리스트 대통령 취임으로 인해 7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염려를 담은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21일 국가를 정의하고, 대선 승리보다는 민주주의의 승리를 기념하고, 새 대통령이 미국의 이념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미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취임사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의 ‘단절’을 강조했다며 이는 대통령 취임사라기보다 대선 캠페인 연설에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FT는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과거 정부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내몰면서 자신의 “위대한 행보”를 내세웠으며 이를 “악의에 가득 찬 뒷걸음질”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는 전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주 등장했던 ‘자유(liberty)’나 ‘정의(justice)’ ‘평화(peace)’와 같은 단어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반면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 적개심을 부추기는 ‘살육(carnage)’이나 ‘빼앗긴(ripped)’ ‘황폐(disrepair)’ ‘고갈(depletion)’과 같은 부정적 단어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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