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의도적인 것이고 사유는 황당 그 자체입니다.”(국내 비데 생산업체 관계자)
한국산 비데제품에 대한 중국 정부의 무더기 불량판정 조치가 양국 간 갈등 고조에 따른 무역보복이라는 관측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불량판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일종의 표적검사 모양새인데다 불량판정 사유도 국내 제조업체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은 지난달 20일 비데 양변기 검사결과를 공고했는데 106개 조사 대상 중 47개 품목에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불합격한 제품의 원산지는 모두 한국과 대만이었으며 불합격 24개 업체 중 22개가 한국 업체이거나 한국 원산지와 관련된 업체들이었다.
이번 질검총국의 조치는 사실상 한국업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 유통되는 수입 비데는 한국·일본·대만 등이 주를 이루며 한국과 일본제품이 고성능으로 평가받는데 이번 조사에서 유독 한국산 제품들만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질검총국의 조사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 국내 비데제조 기업 중 대원이 지난해 9월 가장 먼저 불합격 리스트에 오른 후 대림바스·이누스·아이젠 등이 시차를 두고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중국에 총 15개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대림바스의 경우 지난달 1개 제품, 이누스는 지난달과 이달 각각 1개씩 총 2개 제품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비데업계 관계자는 “한국·일본산 비데와 중국 현지기업이 만든 비데는 기술력에서 큰 격차를 보이는데 중국 정부의 검사는 수입품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그중에서도 한국제품에 대해 표적검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의도적인 행동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구심은 중국 측의 불합격 판정 근거가 황당하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국내 업체에 통지된 판정사유를 보면 △설명서 오류 △소프트 클로징 시간 오류 △접지 불량 등 제품 자체의 하자와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어서 제조업체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질검총국은 판정사유를 통보하면서 지금까지 적용되지 않은 기준을 제시하거나 통보하더라도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해 제조업체들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소프트 클로징 시간 오류가 대표적이다. 소프트 클로징은 비데 사용 시 변기 케이스가 부드럽게 닫히도록 만든 기능인데 질량총국은 케이스가 닫힐 때까지 걸리는 시간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불량판정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소프트 클로징 시간은 비데검사 항목 기준에조차 없는 항목이어서 어떤 업체도 이 기준을 적용하면 피할 수 없다. 사실상의 표적수사인 셈이다.
또 설명서 오류의 경우도 설명서의 어떤 부분에 오류가 있는지는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불합격 통보를 했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따라 국내 비데 제조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비데는 위생도기산업 분야의 대표적인 효자수출 품목인데 그중에서도 중국은 가장 큰 시장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비데는 일종의 ‘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면서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한국산 비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주요 비데업체들이 중국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면세점 영업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실제로 일부 비데업체들은 수출실적에서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데는 수출업체가 자율적으로 인증을 받는 자율인증(CQC) 품목이어서 불합격 처분을 받았더라도 수출 자체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질검총국이 불합격 판정을 받은 제품에 한해 판매중지 조치를 내려 해당 제품 비중이 큰 업체들로서는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비데업계 관계자는 “아직 통관금지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는데도 판매여건이 크게 위축된 상태”라며 “질검총국의 조사가 계속될 경우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