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1969년 쌀값 통제령

1969년 쌀값 통제령



1969년1월24일, 정부가 쌀값 통제령을 내렸다. 농림부와 보건사회부, 내무부 합동으로 발동한 쌀값 통제령의 골자는 서울과 부산, 대구 등 3대 도시의 쌀 소비가격 전면 통제. 시중에서 80㎏ 들이 한 가마에 5,600원선 이상까지 치솟던 소비자가격을 5,220원에 묶었다. 유통구조도 바꿨다. 쌀 반입 창구를 농협으로 제한하고 등록 소매상에게만 판매자격을 줬다. 중간상을 배제한 것이다. 이계순 농림부 장관은 이 같은 특단의 대책을 발표하면서 ‘중간 상인의 쌀값 조작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곡가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부득이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비상대책을 발표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쌀값 폭등. 1968년 말부터 들썩이기 시작한 쌀값은 신년 들어 불과 보름 사이에 12%나 뛰었다. 연간 관리 목표인 가마당 5,325원 선을 넘어버리고 일부에서는 5,600원에 거래되는 이상 폭등현상까지 나타났다. 정부는 쌀값 상승의 원인을 중간 상인의 농간이라고 지목했지만 원인은 따로 있었다. 흉작. 곡창 지대인 전남·북과 경남 지역의 극심한 냉해로 쌀 생산량이 줄어들었으니 수급 요건상 쌀값이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쌀값 통제령을 시행하면서 미국과 일본 등 외국산 쌀도 66여만t 들여왔다. 당연히 불만이 제기됐다. 미곡 생산 증산을 장려하기 위해 식량 정책의 근간을 저미가 정책에서 고미가 정책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게 불과 3개월 전인 1968년 10월. 시장의 가격 조절 기능을 중시하며 농민들이 쌀 증산 의욕을 갖도록 곡가가 올라도 가능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불과 100일도 안 지나 정부는 가격은 물론 유통까지 손을 댔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나 가능한 쌀값 통제령은 효과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당장의 급등세만 진정시켰을 뿐이다. 더욱이 1969년의 쌀 생산량은 319만5,000t으로 흉년이었다는 전년보다도 41만t 가까이 줄어들어 대도시의 쌀값은 더욱 널뛰었다. 1970년 초에는 가마당 7,000원 선으로 뛴 적도 있다. 유통 과정의 부작용도 잇따랐다. 가격 구조가 이중삼중으로 복잡해져 상인들의 농간은 더욱 심해졌다. 수천개 소매상을 감독하기 어렵다는 틈을 비집고 농협에서 싸게 공급받은 쌀을 대도시 이외 지역으로 빼돌려 차익을 누리는 상인도 생겼다. 1971년에는 쌀값이 1만원선을 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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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을 예상했던 정부가 통제령을 강행한 데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쌀값이 안정되지 않는 한 저임금 산업 구조를 유지하기도, 수출과 경제성장도 어렵다는 인식. 저미가 정책 기조는 농민에게 비싸게 사서 소비자에게 싸게 파는 이중 곡가제도로 이어졌다. 쌀값 통제령을 3공 식량정책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이 때문이다. 맛이 없다는 소비자들의 외면에도 통일벼를 심지 않는 농민은 불순분자 취급까지 해가며 보급을 장려한 이유도 쌀값 통제령의 배경인 저미가정책의 연장선이다.

정부의 강력한 통일벼 보급 덕분에 쌀값 통제령이 발동된 1969년 81.0% 남짓하던 미곡 자급률은 1976년 100.5%에 오른데 이어 1977년 103.4%, 1978년 103.8%를 기록했으나 곧바로 추락하고 말았다. 부작용에 대한 실험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전국에 보급한 통일벼의 후유증 탓이다. 심으면 심을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로 생산농민들의 외면 속에 통일벼 경작이 줄어들면서 미곡 자급률은 1979년 85.7%로 떨어졌다.

1969년 쌀값 통제령으로부터 48년이 지난 오늘날은 한 마디로 격세지감이다. 시장 개방과 쌀소비량의 급격한 둔화세에 따라 정부의 쌀값 통제는 물론 이중 곡가제도 사라졌지만 남은 게 있다. 빚이다. 정부의 양곡증권관리기금이 이 당시부터 누적된 부채다. 농가 역시 빚에 허덕이고 있다. 쌀 증산을 위한 동기 부여와 산업화를 위한 저미가정책이라는 상반된 정책목표가 일시적인 성과만 거뒀을 뿐 사회적 비용을 낳고 농가 부채로 남은 셈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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