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포장기 제조업체인 A사와 마스크팩 생산기업인 B사는 지난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글로벌 퓨처스클럽 사업을 통해 각각 유럽과 호주로 제품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퓨처스클럽은 내수기업 가운데 수출 의지가 강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여 만든 모임으로 이들은 수출 선배 기업들과의 교류를 통해 해외 시장정보와 글로벌 진출 노하우를 공유한다. 필요할 경우 중소기업청과 중진공으로부터 마케팅 등 수출 관련 지원도 받는다. A사 관계자는 “최근 들어 수출 지원 정책이 늘어나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해외로 거래처를 넓히고 있다”며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중소·벤처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의 요구대로 주요 중기 관련 전문가들과 정책입안자들은 중소기업과 벤처업체들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하려면 ‘중소기업 글로벌화 지원 관련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내수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해외 시장 공략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진다면 수출 전문 글로벌 중기·벤처 육성이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은 해외 진출을 위한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중소·벤처기업은 그렇지 못해 제도를 통해 뒷받침 해 줄 필요가 있다”며 “특별법이 제정되면 여러 가지 시행령을 통해 혁신 역량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역량을 보유한 중소기업 연구소를 ‘글로벌 우수연구소’로 지정하고 밀착 지원과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 하다. 글로벌 우수연구소로 선정되면 해외 산학연과 기술협력을 촉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제품 개발과 수출에 성공해 매출액을 올리면 추가로 금융·세제혜택을 주는 것이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중 일정 비율은 반드시 중소·벤처기업에 배정하도록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의 한 해 R&D예산이 19조원 인데 이 중 중소기업에 배정되는 R&D 예산은 9,500억원 수준으로 1조원에 못 미친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정책본부장은 “미국도 중소기업법을 통해 중소기업 전용 R&D 예산 비중을 매년 늘리고 있다”며 “다만 모든 중소기업에 나눠주기식으로 R&D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술 역량이 뛰어난 업체를 중점 지원해 이러한 기업들이 성과를 내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신성장동력 분야에서 국내 중소·벤처 기업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정부가 인프라 지원과 규제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동화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4차 산업혁명 분야는 퍼스트 무버가 독식하는 구조인데 4차 산업혁명의 기틀인 슈퍼컴퓨터 관련 국내 기술력은 중국의 5%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정부가 4차 산업혁명 관련 필수 인프라 확대에 힘써 중소·벤처 기업이 이를 공공재로 활용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견하고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도 “디지털 헬스케어, 빅데이터 분야는 여러가지 사전 규제로 아직 국내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현실과 가상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이 성과를 내려면 각종 진입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수 인력이 중기·벤처에서 장기 근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국내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30% 수준에 불과한데 숙련 노동자들의 장기 근무를 유도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인력지원 정책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노민선 연구위원은 “내일채움공제 등과 같은 제도를 확대해 숙련 근로자의 장기 재직을 유도해야 한다”며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에 대한 병역특례 제도를 지속해 중소기업이 연구개발과 생산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보기술(IT)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창업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벤처캐피털(VC)과 엔젤투자자들을 위한 중간 회수시장(엑시트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창업학 박사인 목영두 르호봇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대표는 “국내 창업 시장은 IT 분야에 편중돼 있으며 IT벤처가 아니면 2류 기업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농식품, 문화콘텐츠 등의 분야에서도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 대표는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벤처캐피털이나 엔젤투자자들을 위한 중간 회수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해 벤처기업들이 추가 투자를 받아 성장을 도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스몰 M&A 시장 등 세컨더리 마켓을 활성화해 벤처 창업기업들이 유동성을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