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에 빠진 이들에게는 숨 쉴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가장 필요합니다.”
인구 10만명 가운데 28.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불명예를 하루빨리 걷어내기 위해 무려 30년 동안 자살 위기에 처한 이들을 상담해온 사람이 하상훈(57·사진)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이다.
31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하 원장은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만 있으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대학 졸업 후인 지난 1988년 봉사활동으로 위기에 처한 이들의 고민을 듣게 됐다는 그는 “고통스럽고 힘든 사람들을 도울 기회는 없을까 생각하다 생명의전화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말했다. 이후 상담부장을 거쳐 전화상담심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삶의 끝에 선 이들의 심리 상태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1976년 9월1일 설립된 생명의전화는 다양한 분야의 상담 지식을 갖춘 자원봉사자들이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전문성을 갖췄다. 실제로 상담이 활성화하면서 한강 교량의 자살 사망자는 2011년 95명에서 2015년 25명으로 급속히 줄었다.
그럼에도 하 원장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전체 자살자 수가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인구의학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25년 동안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3.6배 늘었다. 하 원장은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은 갈수록 많아지는 반면 이를 해소할 소통 창구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목했다. 또 이른바 자살을 생각하는 ‘자살 위기자’가 많이 늘어나는 최근의 정치·경제·사회적 분위기도 걱정했다.
하 원장은 해법으로 공동체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이 누군가와의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공동체 회복의 첫걸음”이라며 “무엇보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의 관심이 이들의 자살을 막는 최고의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이는 곧 정신병자라는 사회적 편견도 하루빨리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일상을 살면서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고 그럴 때 누군가를 찾아 도움을 청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 원장은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면 반드시 한국생명의전화(1588-9191) 상담을 받아볼 것을 호소했다. 상담을 받은 대부분이 자살을 단념했고 설사 자살을 시도했더라도 대다수는 경찰과 소방 당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신속하게 구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