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말과 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지식인이라 불리곤 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지식인은 사상을 다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관심거리인 다양한 현안 과제들인 저성장, 역사 교과서, 소녀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그리고 북핵 문제들을 둘러싼 논란의 이면에는 지식인 문제가 놓여 있다. 지난 세계 100년의 역사는 지식인들의 엉뚱한 주장이나 행동거지로 가득 차 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 사회도 비슷한 홍역을 앓아왔고 지금도 앓고 있다. 사업가들은 과오의 대가를 몰락이라는 비용으로 톡톡히 지불하곤 만다. 반면에 지식인들은 어떤 주장을 펼쳤든 그 주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든 좀처럼 사과하는 법도 없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법도 없다.
저성장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과 해법도 지식인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차기에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던 간에 더 큰 정부를 향한 전진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더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100년 동안 그토록 많은 비용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배운 것이 없다. 영국의 걸출한 문필가이자 역사가인 폴 존슨은 역사의 교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역사에 대한 연구는 지금 이 순간의 오만을 바로잡아주는 강력한 해독제이다. 참신하고 그럴듯해 보였던 우리의 가정 중에서 많은 것들이 그 전에 이미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엉터리로 검증됐는데도 지금 다시 엄청난 인적 피해를 안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의 원인은 거대정부와 거대한 정치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은 일이다. 한국 사회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 문제에 칼을 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과도한 의욕과 정치에 의한 자의적 자원배분을 요구하는 지식인들의 영향력과 다수 대중들의 뜨거운 바람은 앞으로 더욱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보수’가 오욕의 단어가 돼버렸고 ‘진보’가 새로운 용어로 부활하는 것을 보면서 이 시대의 보석 같은 지식인 토마스 소웰(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의 최근작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에서 한 문장에 주목하게 된다. “정치적 좌파의 비전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정부에 의한 집단적 의사결정을 통해서 경제적 및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방향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20세기 역사를 들여다보라. 그곳에서 의욕적으로 전개됐던 캠페인과 같은 실수가 이 시대에 반복될 음울한 전조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선택은 우리에게 큰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