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 팔고 주식을 매수하라.” 연초 시장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글로벌 금리가 상승하자 채권시장의 자금이 대규모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을 예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기대가 무색하게 올 들어 주식형펀드에서는 자금 썰물이 계속되고 있다. 코스피 박스권 탈피에 대한 불확실성이 시장의 발목을 잡으면서 여전히 채권·인컴펀드 등 안정적인 투자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일까지 국내외 주식형펀드(상장지수펀드 제외, 공·사모 합계)에서 1조3,199억원이 빠져나갔다. 매년 1월 유출액 기준으로는 2012년 이후 최대치다. 주식형펀드의 자금 이탈은 최근 코스피가 박스권 상단부에 근접함에 따라 차익실현을 위한 환매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펀드별로도 ‘신영밸류고배당’ ‘한국투자네비게이터’ ‘미래에셋가치주포커스’ ‘KB밸류포커스’ 등 덩치가 큰 대표펀드들에서 자금 유출이 거셌다.
신한금융투자는 2011년 이후 시장이 조정을 받을 때 주식형펀드 자금이 유입되는 패턴을 보였다며 2월 시장이 조정을 거치면 환매도 멈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환 신한금투 연구원은 “주식형펀드에 묵은 먼지를 털어야 다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며 “2월 조정기를 거치며 저가매수 심리가 강해지면 주식형펀드에 다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형펀드에 실망한 투자자들은 채권형펀드나 목표전환형 펀드와 같은 단기 대응 상품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지난 한 달간 국내외 주식형펀드와 국내 채권형펀드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간 반면 해외 채권형펀드에는 유일하게 3,547억원이 들어왔다. 올 들어 설정된 신규 펀드 15개 중에서도 절반 이상인 7개가 국내외 채권형펀드이다. 오온수 KB증권 멀티에셋전략팀장은 “금리 상승으로 채권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어 주식에 대한 로테이션 기대는 충분한 상태지만 아직 시장 심리는 중위험·중수익을 낼 수 있는 안정적 투자자산에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시장 단기 대응 상품인 목표전환형펀드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목표전환형펀드는 주식형펀드 또는 채권형펀드로 운용하다가 미리 정해진 목표수익률에 도달하면 채권형펀드나 단기채권형 ETF로 전환해 운용하는 펀드다. 올해 신규 펀드 15개 중 5개가 목표전환형으로 설정됐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한국투자든든한달러표시채권목표전환1(채혼)’을 내놨고 KB자산운용도 ‘KB든든한중국본토가치주목표전환1(주식)’과 ‘KB든든한G2목표전환1(주식-재간접)’ 등을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