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해 KO로 이기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던 ‘코리안 좀비’ 정찬성(30). 1,281일 만에 8각의 링에 다시 선 그는 약속대로 화끈한 KO승을 거뒀다. 경기 후 대형 태극기를 두르고 아내를 포옹한 정찬성은 이런 말도 했다. “대한민국의 시국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 만큼 국민이 화합해서 마음 따뜻하고 강력한 지도자를 탄생시키기를 기대합니다.”
돌아온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 한국인 첫 UFC 챔피언 등극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정찬성은 5일(한국시간) 미국 휴스턴의 도요타센터에서 열린 미국 종합격투기 UFC 페더급 경기에서 데니스 버뮤데즈(31·미국)를 1라운드 2분49초 만에 KO로 드러눕혔다. 1,726일 만의 승리다.
버뮤데즈는 페더급 랭킹 9위의 강자. 종합격투기(MMA) 통산전적 17승5패를 자랑하던 버뮤데즈가 KO패를 당하기는 두 번째이고 1라운드 KO패는 처음이다. UFC가 가장 주목하고 UFC 팬들이 가장 열광하는 기대주 중 한 명이었던 정찬성은 3년6개월 만의 강렬한 복귀전 덕에 다시 한 번 코리안 좀비 열풍을 불러일으킬 조짐이다. 미국 최대 스포츠축제인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슈퍼볼 개최지인 휴스턴에서 슈퍼볼 하루 전에 열려 그만큼 관심을 모으는 경기였다.
UFC 측은 마지막 경기 후 3년6개월간 옥타곤에 오르지 않은 정찬성을 메인이벤트에 올리는 ‘도박’을 걸었다. 도박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부분 버뮤데즈의 승리를 예측했다. ‘링 러스트(Ring rust·오랜 공백으로 인한 기량저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보통의 5분 3라운드 경기가 아니라 5분 5라운드의 메인이벤트라는 것도 실전감각이 무뎌져 있을 정찬성에게는 약점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케인 벨라스케스·론다 로우지·BJ 펜 등 내로라하는 스타선수들이 링 러스트를 극복하지 못하고 끔찍한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좀비는 달랐다. UFC 최초로 트위스터(척추·경추를 뒤트는 관절기) 기술에 이은 서브미션(상대의 경기 포기) 승리와 7초 만의 KO승 등 매 경기 드라마를 써왔던 정찬성은 두 딸의 아버지로서 처음 나선 이번 경기도 1라운드 중반에 끝내며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다. 레슬링 기술이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버뮤데즈를 상대로 오히려 테이크 다운을 두 차례 시도하며 허를 찌른 정찬성은 라운드 중반 상대 잽을 슬쩍 피한 뒤 절묘한 타이밍에 오른손 어퍼컷을 턱에 꽂아넣어 그대로 경기를 끝냈다. 15㎝ 더 긴 리치(공격거리)를 이용해 접근전을 피하고 상대 주기술을 선제적으로 쓰는 등 전술의 완승이기도 했다. 경기 후 정찬성은 “군 복무 기간에도 매일 1~2시간씩 연습을 빼놓지 않았다. 레슬링과 스텝 연습을 가장 많이 했다”고 털어놓으며 KO 순간에 대해서는 “항상 연습해왔던 어퍼컷인데 어쩌다 보니 나왔다”며 웃어보였다.
이날 관중석에서는 정찬성의 아내 박선영씨가 눈물로 남편을 응원하고 있었다. 2014년 3월 결혼한 부부는 딸 둘을 키우고 있다. 서울 역삼동에 체육관을 운영하며 그곳에서 운동해온 정찬성은 복귀전에 앞서 경제적인 부분 등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대전료와 승리수당(4만달러)에다 ‘퍼포먼스 오브 더 나이트’ 수상에 따른 5만달러 보너스까지 챙기면서 약 1억원을 받게 된 그는 6일 오후6시 금의환향한다.
2010년 UFC에 데뷔한 정찬성은 챔피언전을 치러본 유일한 한국인이다. 2013년 8월 챔피언 조제 알도(브라질)와 대결, 경기 중 어깨 탈구로 4라운드 TKO패했지만 대등한 경기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좀비라는 별명은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듯한 동작 속에 결정타를 숨기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아무리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맷집도 한몫했다. 고통스러운 어깨 재활 후 공익근무 기간까지 거치고도 전성기를 되돌려놓은 정찬성은 한 경기만 더 승리하면 다시 챔피언전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찬성은 한때 페더급 랭킹 3위까지 오른 적이 있다. 복귀전을 준비하며 챔피언전 때의 프로그램과 똑같이 강훈련을 소화해 성공을 거둔 정찬성은 뜨거운 스포트라이트 속에 챔피언 도전을 이어가게 됐다. 그의 종합격투기 전적은 14승4패(4KO), UFC 성적은 4승1패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