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소추 사유에 대한 피청구인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최순실(61) 씨 관련 의혹에 대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떠넘겼다.
동아일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A4용지 13쪽 분량의 의견서에서 ‘최순실 씨와 관련이 있는 줄 몰랐다’, ‘공익적 목적에서 한 일’ 등 청와대 기밀 유출과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여에 관련된 여러 의혹 전면 부인했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이 최 씨에게 청와대 문건 등 각종 기밀 자료를 유출한 데 대해선 “‘최서원(최순실 씨의 개명 후 이름) 씨 의견을 들어보라’고 한 것이지, 문건이나 자료를 보내라고 한 것은 아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박 대통령은 “201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뒤, 비서진이 나의 국정 철학이나 언어 습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연설문이나 말씀자료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연설문 등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정 전 비서관에게 40년 지인인 최 씨의 의견을 들어서 참고하라고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2013년 8월경 대통령비서실장 및 비서진이 교체돼 비서진의 연설문 작성 업무가 능숙해졌다”며 “최 씨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하는 경우가 점차 줄었고, 시간이 흐르며 그 과정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정 전 비서관에게 연설문, 말씀자료 이외의 다른 자료를 최 씨에게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한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교체 배경에 대해 “체육계 비리 근절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조직 장악력도 떨어져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아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 전 장관은 지난달 헌재의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해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나의 고언에 짜증과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며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 지시를 거부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해당 의견에서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 24, 25일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면서 해당 기업의 현안이 담긴 말씀자료를 봤다고 인정했다.
해당 말씀자료에는 ‘오너 총수 부재로 큰 투자, 장기적 전략 수립이 어렵다(SK·CJ)’,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가 심하다(삼성)’, ‘노사문제로 경영환경이 불확실하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말씀자료는 인터넷에서 모아 정리한 ‘참고자료’에 불과하고 실제로 그 같은 이야기를 (대기업 총수들에게) 한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최 씨가 K스포츠재단의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만든 회사 더블루K에 대해선 “최 씨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서 “더블루K는 독일의 유명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의 한국 지사로 실력 있는 업체이고, 공익사업에도 적극 기여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더블루K에 각종 지원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더블루K가 공익재단 일을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있는데, 대기업에 밀려 애로를 겪고 있다기에 중소기업 지원 차원에서 호의적 지원을 부탁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세영 인턴기자 sylee230@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