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화전산업단지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A사의 이동건(가명) 사장은 아침저녁으로 환율 흐름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지난 6일 원·달러 환율이 3개월 만에 1,130원대로 내려앉자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수준일 때 대규모 수출계약을 체결했는데 최근 대금결제가 이뤄지면서 환차손으로만 수억원을 날렸다. 그는 “이번 결제대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로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더 두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원·달러 환율급락의 여파로 수출 중소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자체적인 환율전망과 다양한 장치로 환헤지에 대비한 대기업과 달리 국내 수출 중소기업 중에서는 환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특히 수출 중소기업에는 ‘키코(KIKO) 트라우마’의 상처가 여전히 깊다. 키코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 환율이 급등하면서 도루코·상보 등 많은 수출 중소기업들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2008년 키코 사태 여파가 워낙 강력해 중소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이 환율관리를 포기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수출 중소기업들은 수출단가를 인상하거나 원가를 절감하는 식으로 환변동에 대비하고 있는데 환율변동 폭이 지금보다 커지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광역시 남동공단에서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B사 역시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 올 1·4분기 안에 대형 수출계약이 예정돼 있는데 대금지급 조건을 어떻게 설정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탓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환율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수출 중소기업 중에서는 아직도 ‘키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곳들이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중소기업 특유의 낮은 마진율도 문제다.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 이익 대부분을 환차손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그 규모에 따라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스마트폰 부품업체 관계자는 “꼭 수출기업이 아니더라도 대금결제가 달러로 이뤄지는 중소기업의 경우 환율급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며 “하청-재하청 구조로 이뤄진 대기업 하청기업의 경우 더 이상의 마진율 극복이 어려워 적자수출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율하락이 지금보다 가파르게 진행되면 수출 중소기업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적정환율은 중소기업의 경우 평균 1,073원, 대기업은 1,069원이다. 또 손익분기점 평균환율은 중소기업이 1,046원, 대기업이 1,040원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환율 체력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환율변동을 꼽은 수출 중소기업인들은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자 당혹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약달러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수출 중소기업의 채산성과 가격경쟁력 악화 우려가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기업은행 산하 IBK경제연구소가 수출입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올해 가장 우려하는 대외리스크 1위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유럽연합체제 불안 등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64%)’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더라도 무역 총량이 늘어나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이마저도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수출전망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수출 중소기업(46%)들은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지난해보다 둔화’하거나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은 각각 27%에 불과했다.
/박해욱·백주연기자 spook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