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가 영웅을 만들고 영웅은 활로(活路)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시대 새로운 영웅이 필요한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세계 경제가 보호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여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 이후 중국측의 금한령으로 인해 중국시장까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글로벌 무대는 그야말로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난세다. 국내에서도 대기업 총수들은 특검수사에 전전긍긍하고 있고 대기업에 의존해 온 중소기업들 역시 생존 자체를 기적처럼 여기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영웅이 필요한 순간이다. 불투명한 경제여건을 핑계 삼아 대부분이 투자에 소극적인 이때 오히려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이끌어낼 영웅 말이다.
충북 오송에 있는 FM에그텍은 다국적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기농업 자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비료시장 자유화 이후 대부분의 원료와 제품을 외국에서 수입해 소포장 판매에 급급하고 있던 시장에서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유기농업 강국인 일본시장마저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FM에그텍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시장에서 단순히 때를 잘 만나거나 든든한 지원군이 있어서 매년 가파른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독학으로 배운 일본어로 선진 인산발효기술을 국산화해 기존의 화학비료 방식이 아닌 미생물 발효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뿌리발근(촉진)제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농업의 활로를 열어갈 영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서울 목동에 있는 대한에프에이엔지니어링은 각종 산업현장에 사용되는 계장계측기 등을 판매·시공하는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는 평균 근속연수가 20년에 가까울 정도로 안정적인 조직문화가 강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같은 경제위기에 오히려 보너스를 지급하며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왔다. 남들보다 특별히 돈이 많거나 불황을 겪지 않아서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사람이 우선이고 인재가 곧 고객감동을 실천할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 영웅도 변하기 마련이다.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활로는 현대와 삼성 같은 대기업들이 개척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1위에 올라선 대한민국 경제는 이제 한 두 명의 슈퍼 히어로 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국내 고용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의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해타산에 빠져 공전을 거듭하던 정치권을 천 만 개의 작은 촛불이 바로 세웠듯이 중소기업의 작은 불꽃을 모아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시점이다. 주어진 여건을 푸념하기보다는 각자의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작은 영웅들의 힘으로 말이다. /안광석 서울경제비즈니스 기자 busi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