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출렁이는 환율 갈길잃은 시장]美 제조업 살리기냐, 강달러 유지냐 '덫'에 걸린 트럼프

<3> 딜레마에 빠진 달러

'재정지출 확대 → 금리상승 → 강달러' 순환고리 불가피

약달러로 무역수지 개선해도 세계경제 침체 가능성

美 정부, 달러 가치 유지하며 제조업 살리기에 초점

위안화 등 타깃으로 '제2 플라자 합의' 내놓을수도



“트럼프의 무역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돈(Money)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조망하며 이같이 분석했다. ‘제조업 살리기’를 공언한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걸림돌이 ‘강한 달러’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경기부양책이 촉발한 달러 강세가 제조업체들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는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났다. 므누신은 “장기적으로 강달러는 중요하다. 우리는 (강달러라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금은 달러화가 너무도(very very) 강하다. 우리는 미국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제조업 육성에 ‘독’인 달러 강세를 유발한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므누신이 해결해야 할 달러 딜레마는 트럼프의 지출 확대 공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기부양을 위한 인프라 투자 확대와 ‘힘의 외교’를 위한 군비 확장을 약속했다. 곳간이 텅 빈 미국의 재정상황을 감안하면 이는 곧 대규모 국채 발행을 의미하며 이는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금리 상승으로 달러화 투자수익률이 올라가면 달러 수요는 늘어나고 결국 달러화 강세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 확대→금리 상승→강달러’라는 이 순환고리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서 폭발력이 배가될 수 있다.


문제는 ‘트럼프노믹스’가 초래하는 강달러가 ‘해외로 나간 제조업 기반을 다시 되돌리겠다’는 트럼프의 공약과 배치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 이후 지난해 말까지 달러화지수가 6%가량 급등하자 올해 들어 트럼프 행정부는 인위적인 구두개입을 통해 달러 강세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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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트럼프 정부가 제조업 살리기를 우선시해 본격적인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경우 금융시장은 일대 패닉에 빠질 공산이 크다. 그로 인해 미국으로의 자본 유입이 줄어 주식·채권시장이 급락하고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다면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 최악의 시나리오다.

과거 미국은 이런 시나리오를 몸소 체험한 적이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이던 폴 오닐은 2001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종종 강달러 정책을 따르지 않는다”고 발언했다가 달러화가 폭락하면서 그 뒷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후 미국 재무장관에게 ‘강달러’라는 단어는 금과옥조가 됐다.

게다가 ‘약달러’ 정책이 성공해 제조업이 되살아난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약달러로 인한 무역수지 개선은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공급 감소와 동의어로 통하는데 기축통화인 달러 공급 감소는 세계 무역 축소로 이어져 경기둔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약달러→미 무역수지 개선→달러 공급 감소→세계 경제 침체→미국 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기축통화국’이라는 미국의 특수한 지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수지 흑자와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의 양립은 불가능하다는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다.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의 전반적인 약세를 유도하기보다 중국·독일·일본 등 특정 국가를 타깃으로 삼은 것도 이런 사정을 감안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강세는 유지하면서 미국 제조업의 기반을 뒤흔드는 특정 국가의 환율절상을 요구해 일자리를 잃은 백인 중산층을 달래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런던의 헤지펀드매니저인 스테펜 젠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강달러를 포기해야 하는데 이는 곧 기축통화국 포기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강달러와 무역수지 적자 축소라는 상충되는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 해법으로 ‘2차 플라자합의’가 거론된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제프리 프란켈은 “국제사회는 달러가 과도하게 절상되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쌓일 때마다 환율시장에 공동으로 개입해왔다”면서 “달러가 상당기간 오름세를 보인 만큼 달러화 가치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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