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노령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 보호무역주의 등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는 탄핵정국으로 인한 리더십 부재로 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에 대응한 조기 대선 가능성과 함께 대선주자들이 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여러 가지 경제정책과 관련한 구호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성장·혁신성장·창업국가·공유경제 등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구호들은 결국 모든 국민이 잘살 수 있는 경제다.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수단으로 혁신과 공정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 큰 그림의 틀에서는 대선주자들의 차이점을 크게 발견할 수 없다. 이는 심각한 양극화에 대한 우려와 성장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세부적 내용(The devil is in the details)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러한 목적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달려 있다.
한 가지 예가 모든 주자가 공통으로 이슈화하고 있는 재벌개혁이다. 대기업 재벌총수들이 전원 국회청문회에 나오는 초유의 사건을 맞으면서 국민들은 무한한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개혁의 폭과 방법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즉 경제 효율성의 고려 없이 무조건 재벌은 나쁘고 중소기업은 보호돼야 하며 벤처는 좋다는 식의 접근은 피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경(政經)유착이며 ‘탱고를 추기 위해서는 2명이 필요하다(It takes two to tango)’는 말이 있듯이 말 그대로 경(經)만의, 특히 재벌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동시에 정치권의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 일례로 ‘최순실’ 사건에 관련된 와이제이콥스메디칼 같은 회사는 우리가 신성시하는 중소기업 혹은 벤처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벤처기업들이 자생적으로 시장에서 ‘생출’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것이지 현실과 같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벤처시스템은 지양돼야 한다. 정부가 사업의 장래성을 판단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우며 그러한 시스템은 결국 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사업이 아니라 정부가 요구하는 서류를 잘 만드는 사업, 더 나아가 정부와 인맥이 있는 사업에 지원되는 또 하나의 정경유착을 가져온다. 따라서 무조건 재벌은 안 되고 벤처는 좋다는 단순 이원론적 접근은 위험하며 꼭 성장동력을 고양시킨다고 할 수도 없다.
기업 지배구조도 경제 효율성과 공정성에 기인해 접근해야 한다. 기업구조가 효율성이 아니라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와 부당한 부의 이전 방편으로 이용되는 것은 철저히 개혁돼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으로서의 재벌 자체의 불필요성은 좀 더 신중하게 고려돼야 한다. 산업의 특성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필수적일 수 있으며 또한 세계시장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브랜드의 산출은 그 기업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 대한 파급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이나 LG가 스마트폰 같은 첨단사업에서 애플과 경쟁함으로써 다른 수출기업이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반사이익은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예전같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Made in Korea)만으로 평가절하가 아니라 오히려 프리미엄 제품으로 고가 판매가 용이해진 것이다. 이러한 면들은 신중하게 고려돼야 하며 총수 일가의 비리로 전체 재벌기업구조를 단순 부정하는 것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그 속에 있는 아기까지 버리는(throw the baby with the bath water)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지 고려해야 한다.
또 복지 등 재정이 요구되는 공약(公約)들은 그냥 공약(空約)이 되거나 무책임한 재정 파탄을 초래하지 않도록 재정 확보 실현성에 대한 엄밀한 분석에 근거해야 한다. 현재 대선주자들의 정책 집행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의 제시 부재는 대선 초기이기 때문이기를 바라며 본격적으로 경쟁이 진행되면 구체적 정책 경쟁에 근거한 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최재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미시간주립대 교수